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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동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학교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또래, 언니 오빠 할 것 없이 학생들이 자꾸 나를 쳐다본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처다 보는 시선을 느끼며 나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등교를 했다. 학교를 가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가방을 안 메고 실내화 주머니만 들고 등교를 한 것을. ‘이럴 수가’ 나는 앞이 깜깜하고 당혹스러웠다. 아직 수업을 시작하려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무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를 잡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집에 전화를 했다. 그 시간 천만다행으로 엄마가 전화를 받으셨다. 학교 후문에서 엄마를 기다리는데 6학년인 선도부 형님들이 하늘같이 느껴지고 마치 경찰 아저씨들처럼 느껴졌다. 1분 2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고, 아직도 멈추지 않는 당혹스러움과 교실에 늦게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무서움, 엄마가 가방을 가지고 오신다는 안도감이 뒤섞어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나가셨을 엄마가 안 해도 되는 일을 하시느라 얼마나 분주하실까 싶고 엄마에게 혼날 일도 캄캄했다. 학생이 가방을 놓고 학교를 가니?부터 애가 무슨 정신이 이렇게 없니? 이 바쁜 아침에 이러면 어떡하니?  밤에 보자. 기타 등등 엄마가 어떤 말씀을 하셔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드디어 가방을 든 엄마가 도착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나를 보고 “왜 울고 있어? 괜찮아. 얼른 들고 들어가. 오늘 잘 보내고.”라고 말씀해 주셨다. 혼 줄이 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엄마에게 너무 고마웠다. 엄마는 아셨던 것이다. 엄마가 혼내지 않아도 아이가 가방을 기다리는 시간 이미 혼 줄이 났다는 것을. 가방을 잘 챙겨 다니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학교 갈 때 몇 번이나 가방을 챙겼나 확인하고, 누군가 스쳐 바라만 보아도 등에 메고 있는 가방부터 다시 확인할 것이라는 것을.



보통 아이가 바르게 자라고 잘 되라고 아이를 가르치고 혼을 내는 것을 훈육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바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때로는 아이의 마음에 대한 배려는 배제시키는 경우가 있다. 나의 가방 사건처럼 아이들은 이미 벌어진 상황이나, 자기의 실수를 통해 이미 상당 부분 필요한 메시지들을 깨닫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과정을 통해 당혹감과 후회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메시지를 얻는 경우들이 왕왕 있을 것이다. 놀고 싶어서 앞뒤 살피지 않고 뛰어들다 시퍼렇게 멍든 무릎이 아이에게는 몸으로 얻은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엑스표가 가득한 시험지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메시지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아이는 스스로 배워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엄마들은 그냥 보고 넘어가기가 힘들다. “조심하라고 했지? 그러니까 다치지?” 하고 혼을 내거나 “엄마가 뭐라 그랬어? 너 그렇게 놀기만 하면 시험 못 본다고 했지?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이 있는 줄 아니?”라고 쏟아낸다.


훈계를 가장한 화를 쏟아 내는 것이다. 아이에게 얼마만큼 들려질지 모를 말들을 정신없이 쏟아내느라 아이 스스로 교훈을 얻을 시간을 주질 않는다. 이미 상황에서 가르침을 받은 아이에게 엄마가 할 수 있는 훈육은 그 가르침을 얻기 위해 애를 먹었을 아이를 배려하고 보듬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최상의 훈계가 되어 주며 울림이 있는 메시지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옛 선조들은 회초리를 고운 보자기에 싸서 되도록 높은 곳에 올려놓으셨다고 한다. 회초리를 꺼내는 시간, 보자기를 푸는 시간을 통해 감정을 다스리고, 생각과 말을 정리한 후에 바른 훈계를 하기 위한 안정장치를 해 놓으신 것이다. 그만큼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는 화들을 담고 있는 것은 훈계가 아니라는 말을 대변해주는 행동일 것이다.


누군가의 화가 나에게 가르침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화는 화를 부른다. 부부 사이를 보자. 아내의 실수나 잘못을 보고 남편이 화를 내며 잘하라고 말한다면 남편은 아내에게 사과를 받아 내거나, 깨달음을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남편은 목적 달성은 이루지도 못한 채 ‘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아내가 청하는 제2라운드를 시작하게 된다.


화를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가르침을 주기 힘들다. 화는 화이지 훈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것을 받는 상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엄마가 화를 가득 담고 “이렇게 하면 되겠니? 저렇게 하여라.”라고 연설을 하여도 그것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게 된다. 부모의 훈계를 가장한 화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원망과 분노를 쌓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교육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어린 자녀는 부부처럼 대등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같이 화를 낼 수는 없다고 하여도 그것들을 마음에 쌓아두게 된다. 성장하고 힘이 생기면 그 안에 담긴 분노들이 표출하여 많은 문제들을 낳는 것을 보게 된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거짓말을 해 엄마에게 혼이 났다. 아무리 잘 못한 일도 정직하게 말했을 때는 혼나지 않지만 거짓말을 했을 때는 혼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짓말은 절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자랐는데 아이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처음 하는 거짓말은 너무나도 어설펐고 엄마 눈에는 단번에 보였다. 진실 되게 말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끝까지 거짓말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보자기에 곱게 싸놓은 회초리를 꺼내 들었다. 그 날 아침 아이는 엄마에게 혼이 나고 학교에 갔다.  거짓말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필요한 훈육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도 거짓말은 안 되는 것이기에 혼나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다시는 하지 않기로 다짐을 받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시간이 지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거짓말을 안 하는 딸이 왜 그랬을까? 부끄럽게도 나는 그 제서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까는 눈앞에서 다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딸이 기가 막히고 계속 아니라고 버티는 모습이 화를 돋우었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이 가득했다. 그런데 깨달았다. 아이가 왜 거짓말을 해야 했는지 아이의 마음과 상황을 묻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가 내준 미션을 제대로 하지 않고 했다고 거짓말 한 딸은 엄마에게 엄마가 내주는 미션이 힘들다고 말했었다는 것을. 그때마다 그건 해야 해 라고 말했었다. 거짓말이 아니고선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에게 없었던 것이다.


아이를 향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엄마의 미션이 부른 거짓말이며 엄마의 배려가 없는 혼냄이었다. 아이를 향한 배려가 있었다면 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혼내기 전에 물었을 것이다. 혼내기에 앞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아이와 대화를 하며 아이가 할 수 있는 미션으로 조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감정이 고조되어 있었고 가르침만이 앞섰다.



‘훈육’의 사전적 의미는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 기름’이라고 나와 있다. ‘혼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놀라거나 힘들거나 시련을 당하거나 하여서 정신이 빠질 지경에 이르다.’라고 나와 있다. 쉽게 혼용되어 쓰이고 있는 두 단어의 뜻은 명백히 다르다.


딸이 엄마에게 정신이 빠질 정도로 혼 줄이 나고 학교에 가고 나서야 알았다. 진정한 훈계로 교훈과 가르침을 주었을 때는 마음이 뿌듯하고 따뜻하지만 화를 품은 혼을 내고 나서는 나 또한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마음이 줄을 못 잡는다는 것을.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마음 줄을 잡고 아이와 대화를 했다. 배려하지 못함을 사과하고 진정한 훈육을 위해 아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진정한 훈육은 배려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것을 마음으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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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30 09:25:59
  • 수정 2022-03-30 09: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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