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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을 때 행복해진다’는 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참 유명한 말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 또한 참 좋아하는 말이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말들 때문에 울고 싶은 감정을 무시하고 뒤로 미뤄두게 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억지로 ‘웃어야지, 좋게 생각해야지’, ‘네가 이렇게 좋은 생각을 안 해서 안 되는 거야.’하며 스스로 자책하고 안 되는 웃음을 만들려고 힘든 때는 없었는지 생각해 보고 싶다.


물론 억지로 웃는 것도 뇌가 진짜 웃음으로 오인해서 좋은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것이 뇌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며, 웃으면 항암세포가 증가한다는 보고도 듣게 된다. 웃음이 좋은 회복 도구가 되어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우리는 보이지 않게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내가 웃어도 웃는 게 아닐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참 내 슬픈 마음을 만나주는 것에 노련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엄마가 그러하셨다. 엄마는 눈물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삶을 사셨다. 엄마가 울어버리면 안 되기에 눈물을 꼭꼭 삼키는 삶을 산 것이다. 엄마는 오 남매의 막내인 나까지 다 출가시키고 난 후 불의의 사고로 인해 병원에서 지내게 되셨다. 병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장기 환자들이었기에 그곳은 집보다 더 익숙한 곳이 되었고 병실을 같이 쓰는 사람들이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어느 날 병실에 모인 분들이 자신이 재활병원까지 오게 된 사연들을 풀어놓으신 적이 있었다. 모두 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재활병원에 계셨기 때문에 안타까운 사연이 넘쳐났다. 얼마나 많이들 울어야 했는지 여기저기서 구구절절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그때 엄마는 딱 한마디만 하셨다. “전 눈물이 다 말랐어요. 울새가 없었네요.” 그게 끝이셨다. 그런데 나는 그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세월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 나이 서른아홉 살이 된 가을 어느 날 저녁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셨다. 아침에 출근한 아빠가 뺑소니 차량에 치여 교통사고로 사망하셨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나는 여섯 살의 나이였고 내 위로는 네 살 터울의 오빠와 그 위로 두 살 터울 씩 나는 언니 셋이 있었다. 엄마는 하루아침에 홀로 어린 오 남매와 세상에 남겨진 것이다. 


혼자의 몸으로 어린 자녀들을 키워야 했던 엄마는 당장 주어진 생계의 무게 앞에서 슬퍼할 겨를도 없으셨다. 어쩌면 엄마가 슬퍼하면 다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슬픔을 꾹꾹 누르고 씩씩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온 후 한 번도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우신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단지 노을이 지는 저녁, 막내인 나를 무릎에 안혀놓고 먼 산을 넋 놓고 바라보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도 난 그때 알았던 것 같다.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큰 미망인의 슬픔을. 그 뒤로 난 무의식 중에 엄마에게 슬픈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의 슬픔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엄마를 더 이상 슬프게 할 수 없어 나 또한 아빠를 잃은 슬픔을 한 번도 표현해보지 못했고 엄마에게 늘 웃는 모습, 기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의 감정을 살피고 읽는데 마음을 쓰지 못했다. 



나와 비슷하게 자신의 감정에 둔한 삶을 사신 분이 계시다. 지금은 상담가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만지시는 삶을 사시지만 한 때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낄 수가 없어 힘들어하셨던 분이시다. 이분의 엄마는 너무나 고운 분이셨다. 늘 단정하고 고운 옷을 입으셨고 딸이 소풍을 갈 때면 친구들 도시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싸 주셨다.


딸 도시락뿐 아니라 선생님들, 친구들 것까지 넉넉하게 챙겨주시는 오색빛깔의 도시락은 어디를 가나 인기 만점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너희 엄마는 어쩜 이렇게 예쁘시고 요리도 잘하시냐며 넌 이렇게나 사랑받아서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분은 그런 말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번도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느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단정한 옷매무새만큼 성격도 깔끔하셔서 크게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시는 성격도 아니시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성격이 애정표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 살아오면서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거나 스킨십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늘 언제나 같은 온도와 같은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워할 때마다 빈껍데기 같은 마음이 들었고 그런 엄마 밑에서 성장하면서 자신도 엄마처럼 희로애락에 대한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 것이다. 성장을 한 후 이런 감정억제로 인한 여러 가지 폐단이 나타나 결국 상담치료를 받게 되었고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의 감정을 만나주는 삶을 살고 계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엄마가 강인한 가장이 되려고 눈물을 삼키지 않고 쏟아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아마 엄마의 울음에 어린 자녀들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줄줄이 눈물바람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서로의 슬픈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기에 훨씬 더 빠른 회복력을 지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어린 나도 감정을 억제하지 않고 슬프면 울어도 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고 오랜 시간 속울음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은 표현하고 만나주며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울음에는 놀라운 치유력이 있다. 웃음에 놀라운 치유력이 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학계의 보고에 따르면, 감동해서 흘리는 눈물이 웃음보다 여섯 배나 강력한 치료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국의 세로토닌 연구의 권위자인 이시형 박사님의 ⟪100퍼센트 인생⟫에 나오는 내용이다.


일본의 세로토닌 연구 권위자인 아리타 히데오 교수는 이를 감루 요법이라고 했다. 아리타 히데오 교수는 한 방울의 눈물이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치료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연구가들도 눈물을 흘리면 부교감신경이 자극되어 감정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슬픔을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눈물에는 이러한 치유력과 회복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부모가 아이 감정도 잘 안다’는 말이 있다. 자기감정의 다양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이의 다양한 감정선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이치 일 것이다. 엄마들은 때론 아이들을 위해 눈물을 삼키거나 감정을 숨기기도 한다.


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엄마가 숨기려 해도 감각적으로 그것들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느낌들이 계속 베일에만 쌓여 있으면 아이들은 감정은 쌓아두고 숨겨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담습 할 수 있다. 많은 감정들을 수면 위로 길어 올려 아이들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대화의 시간이 엄마인 나에게도 떠돌아다니는 감정을 규정하는 시간이 되어주고 아이에게도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슬픔이고 눈물이어도 좋다. 감루 요법이 작동하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감정이 꽉 차 있는 아이를 일부러 ‘꾹’ 찔러 눈물을 터트리게 할 때가 있다. 욕구의 불만과 화를 참으며 ‘씩씩’ 될 때보다 ‘빵’ 터져 울고 나면 아이들은 되려 금방 맑아지고 순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엄마인 우리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아이들처럼 순수하게 나의 감정을 만나주며 희로애락을 느끼고 표현한다면 더 건강하고 깨끗한 감정선으로 아이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도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아이들로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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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4-07 11: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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