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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올 시간이 되었는데, 전화도 없고 도착시간이 늦어진다. 그날은 하교 후 같이 가야 할 곳이 있어 시간 약속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이가 오지 않는다. 동생들은 다 준비하고 있고 제일 수업이 늦게 끝나는 큰아이만 도착하면 바로 출발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큰아이가 오지 않으니 약속시간에 늦을까 애가 탄다. 학교 가기 전 일정을 얘기하고 몇 번을 당부하고 보내지 않았던가? 평소 같으면 도착할 시간인데도 오지도 않고 전화까지 안 받는 딸을,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리고 있자니 화가 났다.     



드디어 도착한 딸을 붙들고 소리가 높아진다. “서은아 오늘 약속 있는 거 생각 못했어?. 엄마가 끝나면 바로 오라고 했잖아. 전화도 안 하고, 전화해도 전화도 안 받고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는데 이제 오면 어떡하니? 학교는 진작 끝났는데 왜 늦은 거야?” “그게 전화기는 학교 끝나고 켜는 걸 까먹었고요. 집에 오는 길에 한 아이가 길을 찾고 있는데요. 말로 가르쳐 주었는데 어려워해서 내가 아는 곳이라 그곳까지 데려다주고 오느라고요.” 기가 막혔다. 지금 그럴 때란 말인가? 딴 때 같으면 좋은 일 했다고 칭찬을 해주었을지 몰라도 그날은 화가 났다.


그러면서 엄마의 연설이 시작됐다. “서은아 남을 돕는 일도 좋은 일이고 어린 동생이 걱정이 되어서 챙겨 준 것은 이해가 가지만 상황을 생각해야지. 오늘이 무슨 날이야? 엄마가 아침에 몇 번이나 얘기했니? 늦지 않게 가야 하니 학교 끝나면 바로 오라고 했잖아. 서은아 오드리 헵번 좋아하지? 오드리 헵번이 자녀에게 들려준 말이 있어. 바로 네 한 손으로는 너를 돕고 다른 한 손으로 남을 도우라는 말이야. 서은아 다른 때 같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서은이가 끝나자마자 와서 서둘러 가야 하는 상황이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 돕는다고 서은이의 상황은 생각도 않고 이렇게 늦으면 어떻게 하니?” 



딸에게 들려준 부분은 오드리 헵번이 죽기 몇 달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두 아들에게 들려주었다는 샘 레븐슨(Sam Levenson)의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런데 아이에게 들려주고 있는 그 말이 갑자기 내게 들려졌다. ‘나는 양손을 펼쳐 균형 있게 남을 돕고 또 나를 돌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울면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주느라 식사 때를 한참 놓친 후에야 늦은 저녁을 차려주었던 내가 아닌가? 아이들의 행복 메뉴인 라면을 끓어주었던 어떤 날은 라면을 먹고 있으니 나중에 다시 전화하라고 말하지 못하고 괜찮다고 말하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아주느라 결국 퉁퉁 불은 라면을 버려야 했던 내가 아닌가? 굳이 약속을 잡고 싶지 않아도 나를 생각하기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그를 위해 나의 시간을 때어 내지 않았던가? 



아이에게 하고 있는 말이 내 귀에 들리자 주마등처럼 나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책가방을 메고 먼 곳까지 다녀와 볼이 발그레한 아이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교차되며 나는 격양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들을 챙겨 나갔다. 그리고 아이들은 들려주는 말이 아닌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가슴에 계속 맴돌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의 일이다. 지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놀 기회가 있어 같이 놀거나 모임이 있어 같이 시간을 가질 때가 있다. 헤어질 때가 되면 아이들이 아쉬워 “엄마 우리 집에 다 가서 놀면 안 돼?” 하고 물을 때가 있다. 그러면 엄마들은 급작스런 상황에 다들 당황하며 상황 면피에 바쁘다. 준비 해 놓고 나온 상황이 아니니 서로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럴 때면 웃으며 하는 예사말이 “우리 집 폭탄 맞았어.”였다. 그러면 다들 무슨 말인 줄 아니 공감하며 웃고 넘기는 상황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상황이 펼쳐졌는데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일곱 살인 큰아이가 “우리 집 폭탄 맞아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날은 여유가 있어 집안을 깨끗하게 정돈 해 놓고 나온 날인데 아이가 질문에 반동처럼 답하는 답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우리 아이들이 다 듣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내가 아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지 싶어 생각해 보면 아빠와 나눈 대화를 어느새 다 듣고 있다가 같은 상황이 되면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다시 한번 우리 아이들이 항상 보고 듣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신성일 저자의《내 아이에게 가장 주고 싶은 5가지 능력》이라는 책에도 한 실험을 통해 어른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아이들에 대해 잘 나와 있다. 어른의 행동을 보고 나타나는 유아의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이다.(2017년 9월 2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실험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첫 번째 그룹 유아들에게는 어른들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른이 상자에서 장난감을 꺼내고 힘겹게 분리하는 것 같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두 번째 그룹 유아에게는 어른들이 아무 노력 없이 쉽게 장난감을 꺼내고 분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룹 앞에서는 어른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 세 유형의 그룹을 관찰한 아이들도 각각 다르게 반응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중에서 첫 번째 그룹의 유아의 모습을 들려주고 싶다.


첫 번째 그룹의 유아는 음악을 듣기 위해 버튼을 누르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것이다. 즉 노력하며 무엇인가를 해 낸 어른들의 모습을 본 유아는 자신에게도 어떠한 일이 주어졌을 때 마찬가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그룹의 유아의 인내, 끈기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실험을 통해 어른의 행동으로 아이들의 인내와 끈기가 길려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이 실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내해야지. 노력해야지.”라는 말보다 그런 모습을 담고 있는 행동을 보여 주는 것이 교육적 효과가 더 높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무리 아이에게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 줄 아니? 책은 참 좋은 거야.”라고 말한다고 해도 엄마가 즐겁게 보고 있는 핸드폰에 아이의 눈이 가기 마련일 것이다. 열 마디가 필요 없다. 엄마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책이 얼마나 즐겁고 유익한 것인지 직접 들려주는 것이다. 아이가 그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아이가 성장하여 스스로 책을 읽을 시기가 된다면 엄마가 책과 벗 삼아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는 그 모습 속에서 책은 재미있는 것,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엄마 옆으로 책을 들고 와 앉을 것이다. “너 요즘 말을 왜 이렇게 못되게 하니? 너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해? 엄마가 말은 예쁘게 하는 거라고 했지.”라고 아이를 다그치기 전에 나의 뒷모습을 점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약속을 잘 지키는 아이로 자라나기를 원한다면 “약속은 중요한 거야. 약속은 꼭 지켜야 하는 거야.”라고 가르치기보다 엄마가 먼저 아이와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것이 소리 없는 말이고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엄마의 말이 아닌 뒷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비추고 있는가? 아이가 아름답게 성장하기를 원하는 모습이 있다면 이제 말을 거두고 내가 먼저 아름다운 모습의 옷을 입자. 내 아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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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4-14 07: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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