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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엄마 자신의 내면 아이와 대면하는 시간 -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로 나를 데려다주는 놀라운 마법
  • 기사등록 2022-04-28 19:00:48
  • 기사수정 2022-04-28 1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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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서른여덟, 독박 육아 시기 친정엄마가 농도 깊게, 자주 생각났다. 그 시기가 내게 힘든 시기라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엄마와 나의 동년배의 나이 때문이었다.


내게 독박 육아의 시기는 치열하고도 꽤 길었다. 내가 서른여덟인 그 해는 셋째까지 태어나 다둥이 육아에 도움의 손길이 간절했지만 마음과 몸의 고단함을 남편과 대화로 풀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남편 또한 그것을 받아 줄 여력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오는 시간은 거의 매일 새벽 한 두시였고 거기다 프로젝트 마감이 임박하면 집에도 못 오고 회사에서 간이 잠을 자야 했던 시기였다. 그러니 주말, 휴일이 없는 때도 많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남편도 나도 참 최선을 다하는데도 삶은 수월치가 안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통과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만약 그 시기 남편이 정시 퇴근을 해서 여섯 살, 네 살 그리고 한 돌이 안 된 딸과 알콩달콩 단란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어쩌면 엄마를 향한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더 둔탁했을지도 모른다.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처럼 말이다.

  

나는 2006년에 4월에 결혼을 했고, 신혼에 달달함을 누리던 시기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시다 2007년 1월에 천국으로 먼저 가셨다. 그리고 나는 그해 겨울 아이를 가져 2008년 8월에 출산을 하였다. 첫 아이를 출산하면 그렇게 친정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고들 한다. 내 경우에는 엄마를 떠나보내고 문득문득 두서없이 엄마 생각에 눈물이 많이 났기 때문에 '출산 후에는 얼마나 엄마 생각이 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낯 설은 육아 모드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아이를 품에 안아 키운다는 기쁨과 남편의 살뜰한 챙김 속에서 많은 행복감을 누렸다. 첫 수유로 인한 유두의 찢어짐으로 피가 나는 쓰라림의 시기도 있었고 젖몸살이 나 고열과 가슴 뭉침으로 눈물을 흘리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애쓰며 기쁨을 누리는 시간은 모든 것을 감례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큰 아이가 두 돌이 된 시기, 둘째 출산으로 조리원에 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조리원 거실에 모녀가 앉아 있었는데 딸이 “엄마”하고 말문을 떼는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그 ‘엄마’라는 단어 한마디가 뭐라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와 울어버렸다. 남편은 가정에서 첫아이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에 조리원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 아이들이 오래오래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건강하게 아이들 곁에 있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른여덟, 혼자 육아하며 외롭고 힘든 시간, 아마도 엄마 생각이 많이 났던 것은 그만큼 내가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을 재우려고 어둠 속에 누워 있다 보면 ‘엄마는 셋도 아니고 다섯 참 힘드셨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거기다 엄마는 혼자가 아니었던가? 넋두리할 남편조차 없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그렇다. 남편도 없이 엄마가 혼자된 나이는 나랑 동년배인 서른아홉이었다. 그리고 엄마 곁에는 중3, 중1,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그리고 여섯 살인 막내 내가 있었다.


서른여덟, 그 시기 내가 엄마를 자주 떠올렸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은 엄마보다 더 자주 떠오르는 아이 때문이었다. 바로 여섯 살 아이, 나의 모습이었다. 여섯 살이 된 큰아이를 볼 때마다 여섯 살 내가 생각났다. 여섯 살, 한참 아빠에게 응석을 부릴 나이에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난 그때 “아빠! 아빠!” 하고 마음 놓고 울어 본 적이 없었다. 장례식장에서는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장례식 이후에도 한 번도 아빠를 찾지 않았다.

  

우리 딸들이 갑자기 아빠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떨까? “엄마! 아빠 정말 죽은 거야? 이제 아빠는 다시 볼 수 없는 거야? 나 아빠 보고 싶어. 아빠 보고 싶단 말이야! 싫어. 싫어. 아빠 못 보는 거 싫어” 하며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어쩌면 매일 밤 그렇게 아빠를 찾고 찾으며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나는 매일 얼굴을 보던 아빠에게 “회사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아빠를 찾으며 울어 본 적이 없었다. 보고 싶다고 말해 본 적도 없었다. 그 여섯 살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아빠! 보고 싶어요.”하며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아빠를 찾으며 많이 울었었다. 자라면서도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은 가족들을 향한 배례가 아니라는 생각에 티를 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에서 나만의 답들을 찾아갔었고 스스로 마음을 만지는 시간들을 가졌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모습으로 그 아픔이 다가왔던 것이다. 여섯 살 서은이의 모습 속에서 어린 내가 보였다. 그때는 그 시간을 살아내느라고 보지 못했지만 엄마가 되고 보니 여섯 살 딸을 통해, 여섯 살 내가 보였다.


슬퍼하는 모습을 가족들이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플까 봐 슬픔을 싸고 또 싸서 가슴 깊이 삼켜 버린 아이. 그래서 그런 슬픔이 하나도 없는 듯 밝게 자라려고 했던 아이. 이렇게 떨어져서 보고 있으니 그것을 겪었을 아이가 애처롭게 다가왔다. “많이 아팠겠다.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힘들었겠다.” 마음속에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그 아이가 보일 때마다 ‘울었어야지. 아빠 보고 싶다고. 누구라도 그 상황이었다면 울었을 거야.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얼마나 알고 싶었니?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니? 애썼다. 여섯 살 경미야! 울어도 괜찮아. 내가 안아줄게.” 그렇게 내게 찾아온 여섯 살 경미를 만나주고, 안아주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 둘째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도, 셋째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도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와 같이 아이를 키우는 시간을 통해 어린 자신을 안아준 김희아 씨가 있다. 그녀의 책 ⟪내 이름은 예쁜 여자입니다⟫를 읽어보면 그녀의 삶을 자세히 만나 볼 수 있다. 화염산 모반이라는 안면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붉은 점이 한쪽 얼굴을 덮은 그녀는 아기 때 부모에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괴물이다. 귀신이다”라는 놀림을 받으며 자랐고 많은 손가락질 속에서 상처를 받았다. 그런 그녀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 예쁜 딸을 낳게 됐다. 딸을 품에 안고 기르면서 낳아주신 부모님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큰 점으로 얼굴을 덮고 태어난 딸을 보고 가슴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대신 아파주지도 못하고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느 날은 딸 예은이가 엄마가 되고 자신은 아기가 되어 역할놀이를 하는데 “엄마가 맘마 해줄게.”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 망치로 뒤통수를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단지 아이가 건네는 말인데도 이게 엄마구나 하면서 아이를 통해서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을 또 느끼고 싶어 엄마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엄마, 나 아파!”라는 말을 하며 투정을 부렸다고 한다. “아가 많이 아파? 엄마가 우리 아기 안 아프게 옆에서 지켜줄게.”라는 딸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상처를 만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고 했다.


이처럼 육아는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로 나를 데려다주는 놀라운 마법의 시간이 되어 주는 것 같다. 육아의 시간을 통하여, 아이들의 모습을 통하여 나의 내면 아이를 만나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어떠한 모습이든지 두려움 없이 오롯이 그 시간을 마주하다 보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해하게 되고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시간을 통하여 나를 이해하고, 때로는 나를 낳아 준 부모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나의 내면 아이를 깊이 위로하며 건강하게 세워주는 시간을 두려움 없이 대면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내면의 아이를 키워 내고 나면 육아의 시간은 더 가볍고 활기찬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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