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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공감을 받고 자라는 아이의 자존감 -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것이 먼저
  • 기사등록 2022-05-06 09:06:18
  • 기사수정 2022-05-06 09: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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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큰아이는 15개월이 되어서야 걷기 시작했다. 돌이 지나도 걷지 못하는 아이를 보고 주변에서는 걱정을 했지만 정작 나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큰아이가 겁이 많고 정적인 아이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걷기 시작하면 평생 걸을 것인데 조금 더 늦게 걷는다고 큰일 날 것도 없으니 급할 것도 없었다. 때가 되면 걷겠지 하고 기다리니 15개월쯤 되자 걸을만한 용기가 생겼는지 한걸음 두 걸음을 떼며 걷기 시작했다. 그 후 네 살이 된 아이는 계단을 내려갈 때도 어르신들처럼 옆에 봉을 잡고 내려갔다. 그 조심성 많은 모습과 점잖은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엄마의 손을 놓고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를 잡느라 바쁜 때가 이때가 아니던가? 하지만 우리 집 큰 아이는 그랬다.      


어느 날 아이들이 계단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점핑 놀이를 하고 있었다. 큰아이보다 어린 네, 다섯 살 친구들이 자기의 실력을 보여주려고 앞 다투어 폴짝폴짝 뛰어내리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큰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딸도 도전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의 다리 길이면 충분한 높이였다. 해보지 않아서 엄두를 못 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딱 한번 뛰어보면 ‘에게 이런 거였어? 별거 아니네.’라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싶으니 그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뛰어보라고 했고 아이는 싫다고 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격려하며 엄마 손을 잡고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뒤로 엉덩이를 빼는 아이와 앞으로 잡아당기는 엄마의 템포가 맞지 않아 넘어질 뻔했다. 발목이 괜찮은지 살피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아이가 뛰기에 충분한 거리였을지 모르지만 실제적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의 심리적 거리라는 것을. 그것을 엄마가 간과했다. 아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땐 우선 그 마음을 공감해 주는 것이 먼저였다. 충분히 공감해 준 후 네가 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리는 얼마인지 물어봐 주었어야 했다. 비록 그 계단의 높이가 저 밑바닥이라고 해도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할 수 있다는 격려보다 공감이 아이 내면을 세우는데 더 탄탄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이의 마음이 받아들여진 그 심리적 거리에서 시작해야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둥이를 키우는 엄마로 어려움을 겪는 것 중에 하나가 아이들 사이에 트러블이 생겼을 때다. 아이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이 들지만 거기다 더 곤란한 것은 내가 봐도 기울기가 보이고 잘못한 친구의 모습이 정확히 판가름될 때이다. 큰아이와 둘째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면 말이 조리 있고 나이가 많은 큰 아이가 우세 같아 보였다. 언니에게 당하고 있는 둘째를 보고 있으면 이건 아니지 싶어 넘지 말아야 할 강을 넘고 말았다. 엄마는 공정한 엄마가 되어 논리 정연하게 큰아이에게 따져 묻고 엄포를 한다. 자기 딴에 억울해 할 말이 많지만 혼이 나서 아무 말도 못 하는 큰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때 늦은 후회를 했다. 내가 한쪽에게만 너무 했나 싶으니 둘째에게까지 왜 싸우느냐고 언니 말 잘 들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왠지 ‘나는 공평한 엄마야.’라는 듯 말이다. 


돌아보면 아이가 원했던 엄마는 공정한 엄마도 공평한 엄마도 아니었겠다 싶다. 공정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은 다 내 감정이 우선이고 내 입장만 보이는데 엄마가 제아무리 공평의 저울을 내민다 해도 각자의 입장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각자의 다른 입장과 속상한 마음을 엄마에게 공감받고 싶었을 텐데 엄마에게 지시만 받은 것이다. 결국 그 누구도 공감해 주지 못한 매정한 엄마가 되었다. 꼭 아이들을 혼내고 돌아서고 나서야 큰 아인 큰 아이대로, 작은 아인 작은 아이대로 속상했겠구나 싶으며 그 마음이 헤아려졌다. 그제 서야 그 마음을 공감해 주지 못함을 후회했다.  


아이들의 갈등이 깊어질 때 알았다. 공감이 부족했다는 것을. 트러블로 마이너스가 된 마음을 공감으로 채우려고 했는데 엄마의 훈계가 마이너스 제곱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서로를 보듬을 힘이 없었다. 언니 때문에 동생 때문에 혼이난 격이 되어버렸으니 서로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 때 아마추어들이 오랜 시간 준비해 공연한 뮤지컬 한 편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오는 버스 안에서  ‘사랑해야지.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야지.’라는 마음이 가득 찼다. 뮤지컬의 메시지가 사랑하며 살아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보니 감동적인 영화를 보았을 때도, 자연이 주는 생명력에 감탄하였을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내 안에 감동이 차올랐을 때 올라오는 감정이 사랑이었다. 어쩌면 큰 아이에게 동생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사랑이 진정한 가르침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공감으로 받은 감동은 아이의 마음에 울림이 되어 동생을 사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씩씩거리며, 와서 전하는 아이들의 제보를 그냥 다 들어주려고 했다. 그리고 제보자의 마음을 십분 공감하려고 애썼다. 푸념을 쏟아 놓는 아이의 아군이 되어 같이 욕도 해주고 엄마가 가서 따끔하게 혼내주겠다며 공갈 약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전쟁에는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이 되려고 노력했다. ‘참아야 하느니라.’ 중간에 들어가 편을 가르는 것은 금물이었다. 단지 시간이 지나 전쟁의 폐허에 찾아가 싸 메어 주고 일으켜 주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다둥이 하나, 하나 그 아이대로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공감해 주려고 노력하면서 아이들 사이의 틈이 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도 숙제가 되었던 아이들의 트러블은 공감이라는 열쇠로 하나하나 풀려갔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다. 남편에게 무언가 볼멘소리를 쏟아 놓았을 때 “그랬구나. 당신 혼자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남편의 그 한마디면 족했다. 그 공감에서 위로를 받고 일어날 힘을 얻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 모습을 떠올려 보자. 넘어지고 나면 꼭 주변을 살핀다. 그러다 그 현장을 포착한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그때 아프다고 울먹거린다. 그리곤 엄마의 리액션을 기다린다. “아이고 우리 딸 넘어졌어요. 많이 아팠어? 엄마가 호야호야 해줄게.” 그 격한 리액션, 즉 엄마의 공감에 아이들은 툴툴 털고 일어난다. 공감받은 그 자리에서 일어날 힘을 얻는 것이다. 공감이 먼저이다. 공감을 받은 후에야 마음을 추스를 힘을 얻는다. 가르침은 일으켜 세운 후에 해도 충분하다. 


다시 한번 공감의 언어를 기억하려고 한다. ‘그랬구나’ 이 한마디에 힘이 있다.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은 내가 나여도 된다는 것이며 내 감정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그다음 감정으로 넘어갈 수 있는 여과기를 통과한 것이다. 아이의 말에 공감의 첫마디 “그랬구나”로 시작하자. 또 아이에게 감동을 주는 말 “그럴 수 있어.” “그래도 되지.” ‘그' 시리즈를 준비해 두자. 처음에는 연습이라도 좋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익숙한 소리가 되고 나면 소리에 의미가 더해질 것이다. 공감으로 감동이 흘러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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