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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심리학적 단상 - 심리학자가 읽어주는 세상 이야기. 폭력/폭언/괴롭힘
  • 기사등록 2022-03-31 07:22:04
  • 기사수정 2022-04-07 13: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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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노주선 ]


2019년 7월 소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습니다된다. 그리고 이미 고객들의 폭언이나 욕설로부터 감정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시행되고 있는 상태이며, '부모들의 자녀체벌 금지법'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상당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체육계 및 유명 CEO나 재벌가에서의 폭력 기사가 연이어 터지면서, 핫이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기사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같이 분노하고 있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위로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신체적 폭력이나 언어적 폭력이 우리 생활 전반에 퍼져있으며, 심지어는 법으로 정하여 이를 관리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기사화되거나 공론화되지 않은 채 일상 생활 곳곳에 숨겨져 있는 폭력 사례나 상황을 고려한다면 보다 심각하고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이런 이슈들과 관련하여 심리적 차원에서 고려해야할 몇가지 이슈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 아픈 기억과 고통들



과거의 기억 하나. 

중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는 축구부를 비롯한 운동부들이 있었다. 그 당시 나름대로 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운동부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운동 자체가 아니라 운동부 내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이었다. 훈련의 일부로써 엄청난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으며, 그 당시 기준으로도 무시무시한 공포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이 무서워서 축구부를 비롯한 운동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과거의 기억 둘.

학창시절 가출을 했던 친구가 담임선생님에게 잡혀 온 날이었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아이의 옷을 모두 벗긴 채 대걸레 자루로 수십대를 때렸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숨죽이며 그 장면을 보면서 극심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말씀하셨다. ‘가출하고 싶으면 해, 대신 나에게 잡히지 마라!’라는 한마디를 던지셨다. 우리는 아무런 저항이나 문제의식도 하지 못한 채, 가출하면 맞아주겠구나 라는 생각이 각인될 뿐이었다.


과거의 기억 셋. 

중고교 시절, 반장 등과 같이 영향력 있는 학생들을 심하게 때리면서 그런 행동이 애정의 표현이라고 자랑거리처럼 얘기하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그 선생님의 타겟 중 하나였던 나는 필사적으로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피해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무실에서 그 선생님 옆에 서서 훈계(?)를 듣던 중 나의 대답에 뭔가 불만족스러우셨던 선생님은 ‘뭐라고?’라고 하시며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셨다. 나는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나는 학교 지하 보일러실로 불려 내려갔고, 그곳에 있던 탁구대 위에 올라가 아마도 빗자루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막대기로 종아리를 딱 40대를 맞았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맞으면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고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 참음으로써 내 자존심을 지키는 것 뿐이었다. 왜 맞았는지도 이해가 안되고 납득이 안되는 상황에서, ‘똑바로 해!’라는 말을 던지고 선생님이 가신 후 한동안을 통곡하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2. 우리 모두에게는 폭력의 싹이 내재되어 있다 : Albert Bandura의 보보인형 실험



앞의 이야기들은 단지 나 개인의 경험만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40대 이상의 사람들이라면 유사한 경험들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현장을 보았으며, 어쩔 수없이 침묵했고,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속한 행동 통제를 위해서 폭력이 남발되는 것을 보았으며, 권력을 가진 자가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용인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혹은 폭력도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라는 그럴듯한 겉포장을 씌운 채 폭력이 남용되는 환경 속에서 성장하여 왔다.


심리학 실험 중에 관찰학습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Albert Bandura의 보보인형 실험이라는 것이 있다.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보보인형을 때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한 그룹에게는 인형을 때린 후 칭찬과 보상을 받는 장면을 보여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처벌을 받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 아이들이 보보인형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보상을 받는 것을 관찰한 그룹의 아이들은 당연히 어른들이 했던 것처럼 보보인형을 때리는 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처벌을 받는 것을 관찰한 그룹의 아이들은 보보인형을 때리는 비율이 낮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이후 충분한 보상이 제공될 것이라고 기대되는 상황이 되면, 처벌받는 것을 관찰한 아동들도 보보인형을 때리는 행동이 증가하였다. 즉, 처벌이나 보상 여부와 상관없이 때리는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이미 폭력 행동은 학습된 것이며, 그것이 발현될지 말지는 상황적인 여건에 따라서 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들은 자신이 관찰한 것만으로도 특정행동, 즉 폭력적 행동을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표현할지 안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행동으로 인한 보상이나 이득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즉, 체계적인 학습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폭력적 행동을 관찰한 것만 해도 폭력에 대한 학습은 일어나는 것이며, 자신 안에 내재된다. 다만 폭력 행동을 보였을 때 처벌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 명확한 상황에서는 폭력적 행동이 감소하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폭력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폭력적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체로 소위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최근에 폭력적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경우들을 살펴보면, 그룹의 총수 일가이거나 성공한 사업가인 경우가 많으며, 선수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과 통제력을 가지는 코치나 감독들, 혹은 선배들인 경우가 많다. 또한 일반인들의 대화와는 달리 소위 ‘의원’자가 붙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폭력적 행동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태들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즉 소위 일반인들은 폭력적 행동을 보일 경우 타인으로부터의 통제나 제지를 받지만 그들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적절한 제제를 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마음껏(?) 폭력적 행동을 구사하게 된다. 그래서 평범하고 성실하며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사람들도 권력을 가진 자리에 올라가면 폭력적 행동이나 언행을 통해 타인에게 위해를 쉽게 가하는 문제행동을 쉽게 보인다. 이것이 최근 문제가 되는 ‘가진 자’, 혹은 ‘권력자’들의 폭력적 행동이 만연되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인 것이다.




3. 주먹을 쓰는 폭력만이 폭력인 것은 아니다.



자기 회사의 직원이나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분들의 따귀를 함부로 때리거나, 자신이 관리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폭행을 행사하거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여행 가이드의 얼굴을 때리는 모의원의 행동 등은 당연히 문제가 있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행동이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런 행동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비난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만 폭력인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최고의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었다. 그 안에서는 아이들의 요구나 희망을 무시한 채 부모의 기준에 따라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따르기를 강요한다.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깊은 마음의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다. 또한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자존심을 짓밟는 수준의 심한 비난을 하는 것도 폭력이다. 자기 존중감에 깊은 상처를 내고,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의도적으로 친구를 따돌림 시키거나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것도 명백한 폭력이다. 혹은 피부색이 다르거나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는 것도 엄청난 폭력이다.


즉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적인 폭력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것도 분명한 폭력이다. 폭력으로 다친 몸의 상처는 치료를 통해 아물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상처는 평생을 가는 경우들이 많다. 임상장면에서는 이런 경우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고문 피해자는 평생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살며, 어린 시절 폭력적인 부모에게 맞으면서 성장한 자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 아픔을 안고 산다. 몸의 상처는 아물지 언정 마음의 상처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감정 상태 및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몸의 상처는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상처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분명한 고통과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치유와 해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잘하지 못한다.


행동적 폭력이나 폭언 등 폭력적 행동들은 마음에우리 더욱 큰 상처를 남긴다. 폭력의 부정적 영향은 크게 세가지 정도이다. 첫째는 나의 자아를 파괴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낮은 자존감을 가져온다. 둘째는 타인에 대한 신뢰와 믿을 가지지 못하게 하며, 위협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끼도록 한다. 세번째는 건강한 희망과 미래를 가지지 못하도록 한다. 이 얼마나 나쁜 행동인가?!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이다. 또한 폭력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방관자 역할을 통해 기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폭력의 후유증은 심각하며 그 해악은 오래 갈 수 밖에 없다. 개인적 수준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누군가에게 자행되는 폭력이나 폭언, 그리고 그를 통해서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일들은 관리되어야만 한다. 적극적으로 관리되어야만 한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함과 더불어 진지하고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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