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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아이가 괜찮지 않을 때는

아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안아줄 거고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로 괜찮다고 믿어줄 겁니다.

다 막아줄 수는 없어도

다 들어줄 겁니다.


엄마니까요. "




언젠가 강의를 마치고 정리를 하는데 한 분이 강의 끝나고 곁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성남에서 강남까지 강의를 들으러 일부러 오셨다고 했지요.


그리고 물으셨지요.

“선생님께 아이를 보내고 싶은데 상담실이 어디에 있나요?”


저는 혜화동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명함을 찾으면서 물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으신가요?”

아이가 2년 전 힘든 일을 당했는데 그래서 2년 동안 상담을 받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 정리를 하다가 멈칫했습니다.

엄마는 아이도, 아이를 상담해주신 선생님도 이제 그만 치료를 받아도 괜찮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자신은 여전히 아이에게 상담이 필요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받으러 매주 그 긴 발걸음을 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저는 꺼내려던 명함을 다시 넣고 그분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상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와 상담 선생님 말을 믿어주시고 상담을 잘 종료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상담이 끝난 후에도 어려워한다면 그때 다시 상담받는 것을 생각해보아도 늦지 않답니다.”

지나고 보니 그 말 이외에 다른 말을 더 해줬어야 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요,

1. 그날 바쁜 마음에 딱 그 정도밖에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남아서

2. 그분이 계속 다음 상담자를 찾으러 헤매고 계시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

3. 가장 중요하게는 그분의 모습에서 아이의 상처에 마음이 무너지는 모든 부모님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이따금씩 그날 그분께 더 해줘야 했던, 하지만 해주지 못했던 말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다시 그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꺼내려다가 집어넣었던 명함을 다시 드릴 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는 엄마 상담을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면서요.



Q1.

트라우마는 어렵지만

내 아이의 트라우마는 더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1. 아이 상담과 부모 상담이 '함께'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부모상 담은 어느 정도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과거, 현재,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이런 목표의식에 따라 아이 상담과 부모상 담을 모두 함으로써

아이의 위기 상황이 결과적으로는 아이는 물론 부모도 의연해지고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기회가 된다면 참 좋겠지요.

이상적인 이야기 같지만 내 아이의 상처 극복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관계는 돈독해지고 삶에 대한 통제감이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아이도 부모도 더 단단해지지요.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2. 엄마가 치유를 돕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엄마 입장에서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라고 생각합니다.

1) 아이가 자기 상처의 주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주지 않을 때

2) 엄마가 자기 상처에 더 깊이 함몰되어 아이의 이야기들 들어주지 못할 때

3) 엄마가 상처로 인해 세상과 아이가 가진 힘을 신뢰하지 못할 때



그분은 아이가 ‘엄마 나 이제 괜찮아’라고 말하는데도 ‘아냐. 넌 아직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었지요.

자기 상처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기에 아이의 상처는 물론 상처 극복 과정도 함께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미' 그분이 원하는 것은 이루어졌습니다.

괜찮지 않았던 것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였던 것이죠.

아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괜찮지 않았던 엄마에게는 괜찮다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지요.



Q2.

그렇다면, 상처를 극복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언제쯤 상처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송이 씨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이 씨는 자라면서 동생을 바다에서 잃었습니다.

슬픔이 너무 깊게 마음속에 각인되었지요.

물만 봐도 현기증이 났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화도 났지요.

동생을 잃고 가족들은 저마다의 슬픔 속에서 기운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 힘겨운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도 없이 지나오게 되었지요.


세월이 흐르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그녀는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보낸 공문에 손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며칠 뒤 야외 학습 시간에 원생들이 수영장에 가기로 되어있다고

동의서를 받고 있는 공문이었지요.

그녀는 밤새 고민을 한 후 안 보내겠다고 표시를 했습니다.

안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못 보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 어린이집 차량이 출발 하기 직전

송이 씨는 원장 선생님께 아이를 부탁을 했습니다.

‘안전하게 즐겁게 다녀올게요 어머님 걱정 마세요.’

사정 이야기를 듣지 않고도 송이 씨의 걱정을 짐작한 원장 선생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차량에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날 하루는 그녀의 삶에서 가장 긴 하루 중 한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그녀가 가장 큰 용기를 낸 날이기도 했지요.

또 그 날은

아이가 난생처음 수영장을 가본 날이기도 했어요.


아이는 발그레한 얼굴로 그녀의 품에 다시 안겨

엄마 없이 혼자 해낸 모험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마음의 큰 고개를 넘어섰지요.


그러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삶은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길,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가만히 놓아주는 일

사랑하기에 상처 받고

상처 받기에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아이와 함께 바다에 갔습니다.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모래 장난을 치는 아이 곁에서

그녀는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아팠던 마음의 한 시절을 비로소 이별할 수 있는 마음을 만날 수 있었고

어떤 마침표의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점이

마음속에서 일어서는 것을 느꼈거든요.



아이는 계속 상처 받을 겁니다.


아이를 키우며 우리는 불가능한 꿈을 꿉니다.

상처가 없기를,

아이가 가는 모든 길이 평탄하기를,

아이가 모든 곳에서 환영받기를,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펼치기를,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소망보다 더 냉정하고 가차 없을 때가 많습니다.

아이는 계속 상처 받을 겁니다.


자주 포기하고 싶어 할 것이고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거절을 당할 것이고

쪼그라진 마음으로 눈치를 보기도 할 것이고

온갖 상처 때문에 뭔가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머뭇거리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이 아이에 대해 가진 소망과 사랑과는 상관없이,

또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보유해온 이런저런 경험치와 능력과 상관없이,

속수무책으로 아이가 상처 받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기다려야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아이의 상처에 아이보다 더 크고 깊은 타격을 받으면서도 의연한 얼굴로 버텨주어야 하고

세상의 모든 어쩔 수 없음을 어렵게 소화하고 받아들여야 할 순간도 수시로 찾아올 겁니다.

상처를 딛고 다시 또 한발 내딛겠다는 아이의 ‘이제 괜찮아’를 믿어주며

마음에 일어나는 온갖 불안의 표정을 잠재우며 손을 흔들어주어야 할 때도 올 겁니다.

또 때로는 결국 상처를 주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는 사실에 진저리를 내며

나 자신이 너무도 싫어지는 순간도 삼키며

아이를 키워나가게 될 겁니다.


그 모든 아픔과 고통의 잔재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을 온통 지배하는 절절한 사랑의 마음에 기대어서요.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너는 끝까지 너고 엄마는 끝까지 엄마라,

이 엄마는 어떤 방식으로든 끝끝내 함께 할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지지 않을 것이라"라고

때론 외치고 또 때론 중얼거리며


다리는 풀려도 말에는 힘을 실으며

아이의 손을 잡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갈 겁니다.


아이가 괜찮지 않을 때는

아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안아줄 거고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로 괜찮다고 믿어줄 겁니다.

다 막아줄 수는 없어도

다 들어줄 겁니다.

엄마니까요.

그리고 상처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오늘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1. 아이가 상처 받았다면 아이의 상처에 상처 받은 내 마음이 아닌 아이의 상처에 집중해주세요.

2. 아이가 받은 상처에 깊이 오래 앓게 된다면 아이보다도 엄마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3. 그 모든 상처의 시간을 뚫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 건재하듯, 아이는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결국 상처와 함께 더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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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5-17 06: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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