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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혜령 ]


내게 가장 경제적인 행복의 비법을 묻는다면, 단연 커피라고 하겠다. 식후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 주말오후에 혼자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있는 청승이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행복해’라는 말을 읊조리게 된다. 너무 작은 일에 행복감을 느끼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놀라워하며 그 행복을 의심하기도 한다.




저비용 고기쁨의 즐거운 경험들



그런데 이 의심을 명쾌하게 날려버린 책이 있었다. 소설가 장강명의 에세이인 <5년만의 신혼여행>이다. 글에 등장하는 장강명의 아내 HJ는 행복을 느낄 때마다 리스트에 기록한다. 특별한 형식은 없고 스마트폰 캘린더에 행복해했던 날짜와 이유를 간단히 적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해외로 신혼여행을 와있는 몇 일 동안 그 행복리스트를 작성한 일이 없었음을 깨닫고는 놀란다. 즐겁게 보내고는 있었으나 기록해 둘만큼의 큰 행복감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리스트에는 어떤 일들이 들어가 있었을까. 토요일 아침 소파에 편히 앉아서 예능프로를 보며 샌드위치와 모닝커피를 마셨던 것. 6월의 어느날 지방선거 투표를 하러가면서 나무의 파릇파릇한 잎을 통해 여름이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일 등이 있었다. 


장강명은 아내가 그런 소소한 경험은 리스트에 올리면서 무려 보라카이의 화이트 비치에서 석양을 본 경험이 목록에 오르지 못한 까닭을 이렇게 분석한다. 리스트에 올려진 일들은 행복에 들인 비용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비용 고기쁨의 행복이었기에 랭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방선거일은 덤으로 생긴 공휴일이다. 여름이 오는데 HJ가 기여한 바는 없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날은 따뜻해졌고, 오늘은 주말도 아닌데 쉬는 날이야! 아싸!’ 그래서 HJ는 그 순간을 행복 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하지만 보라카이에서 느끼는 모든 즐거움에는 상당한 요금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우리는 즉물적인 쾌락을 맛볼 때도 실은 무의식중에 비용 대비 편익을 계산한다.

 -장강명 <5년만의 신혼여행>-



돌이켜보면 내가 속으로 ‘아 행복해!’라고 느낀 일들도 놀랍도록 별 것 아닌 일들이 많았다. 지하철에 타자마자 내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리는 바람에 피곤한 퇴근길을 앉아서 갈 수 있게 된 일, 무더위가 지나간 초가을날에 산책을 하면서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적당한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와 같은 일들이었다. 큰 비용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장강명은 아내 HJ가 늘 본전을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재밌게 표현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은연중에 행복을 기대할 때면 자신이 바친 에너지에 대한 상대적인 크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이정도 시간과 비용을 들였으면 이정도 크기의 행복이 내게 주어져야 한다는 무의식적 계산법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소하고 돈이 적게 드는 일일수록 큰 기쁨을 느낄 확률이 높다. 또한 뜻하지 않은 곳, 즉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즐거운 일이 벌어졌을 때 그 것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어딜가나 소소한 기쁨, 소소한 행복을 권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행복에 관해 자주 인용되는 연구결과 중에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있다. 즉 강렬한 기쁨보다 소소하게 자주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자극에 무뎌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강렬한 한방의 기쁨은 금새 무뎌지기 마련이고, 더 큰 한 방이 들어오지 않는 한 행복감을 느끼기 더 어렵게 만든다. 로또 1등에 당첨이 되어도, 그 이후 더 자극적인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아직 복권에 당첨되지 않은 잠재적인 당첨자들보다 훨씬 불행할 수도 있다. 적어도 당첨되지 않은 사람들은 ‘당첨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작은 재미를 만들어 주기라도 할테니까 말이다.


HJ의 아이디어에 착안해서 이렇게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들인 시간, 돈, 노력 대비 큰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방법들을 많이 찾을수록 유리하다는 것. 좋은 대학이나 큰 시험에 합격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노력하지만, 오래들인 시간과 비용만큼의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합격한 그 순간의 짜릿한 기쁨은 결국 익숙해지고, 불만거리는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에게 엄청난 행운이 들이닥친다고 해도, 기쁜 일인 것은 확실하나 장기간의 행복은 확신할 수는 없다. 생은 계속 되는 것이고, 마음은 언제나 새로운 기쁨들을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으면서 동시에 언제라도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찾아야만 한다.



소소하게, 하지만 자주 누릴 수 있는 행복



걸출한 작품들을 펴낸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를 작지만 확고한 행복 즉, 소확행(小確幸)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는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의 수필집을 통해 그만의 행복론을 들려준다. 그가 말하는 작지만 확고한 행복은 이런 것들이다.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팬츠가 쌓여 있다는 건 인생에 있어서 ‘작지만 확고한 행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쩌면 나 혼자만의 특수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중략)

나는 속옷인 러닝 셔츠도 상당히 좋아한다. 산뜻한 면 냄새가 나는 흰 러닝 셔츠를 머리로부터 뒤집어쓸 때의 그 기분도 역시 ‘작지만 확고한 행복’중 하나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외에도 하루키가 좋아하는 것들은 약도나 지도를 그리는 일, 물건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 등 아주 사소하지만 언제라도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방법들을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처럼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넘쳐나는 상품들과 자극하는 광고들에 둘러싸여 있는 도시인들에게 행복은 얼핏 ‘더 비싼 걸 가지는 데에서’, ‘남들보다 더 가지는 데에서’ 오는 것이라 여겨지기 쉽다. 비용을 많이 들인만큼 무언가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돈을 많이 들일수록 더 빨리 갈 수도 있고, 더 편해질 수도 있고, 더 많은 걸 가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게다가 머릿속의 재빠른 비용대비편익 계산기로 인해 기쁨은 상대적으로 더 작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따금 명품백을 살 계획으로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거나, 고가의 전자기기나 손목시계 등을 할부로 구입한 후에, 수개월동안 갚아나간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 상품이 그들을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주었을까. 추측컨대, 엄청난 재력가여서 그 고가의 상품이 커피값처럼 쉽게 지불할 정도의 여력이 아니라면, 하루키의 소확행보다는 마음을 자주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은 큰 돈과 엄청난 인내로 얻어내야 할 무엇보다, 바로 지금 여기서도 부담없이 내 기분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작은 방법들 아닐까. 그게 바로 명품보다 더 마음의 가성비가 높은 기쁨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지금 이순간이 좋다.’를 느끼게 할만한 것들, 이를 테면, 계절의 작은 변화나 주위의 풍경들부터해서 산책과 같은 어렵지 않은 행위들을 통한 즐거움까지. 그런 비법들은 일상 여기저기에 이미 널려있다. 그래서 이렇게 권하고 싶다. 매달 카드고지서를 보며 속앓이 하기보다는 적은 에너지를 들여 자신을 자주 기쁘게 하는 방법들을 찾아보자고. 오늘도 내일도 바로 지금 여기에서 가질 수 있는 기분 좋은 경험들을 많이 만들어내자고 말이다. 그것은 작은 재미들을 발견해가는 일이며, 작은 힘으로 나를 기분 좋게 지켜가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작은 것들의 힘으로 내 마음을 지켜가는 것. 결코 그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소소한 행복은 절대로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니. 


나는 또 한 번 행복이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깨달았다. 필요한 건 그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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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4-12 06: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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