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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서구화된 생활습관의 영향으로 점차 젊은 사람들도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에 노출되고 그에 따라 심장병 발병 비율도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심장수술을 받는 환자의 연령층은 주로 50대 이상이다. 50대도 젊은 편에 속하고 70,80대 환자분들도 수술 가능한 컨디션이며 수술 후 삶의 질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면 수술을 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중환자실에 있다 보면 노년기에 있는 환자분들을 대할 때가 많다.


간호사로서 노년기에 접어든 환자분들을 바라볼 때 환자분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수술 후 통증으로 무기력함에 빠진다.



심장과 폐는 근접해 있는 장기이기 때문에 심장수술 후 심장 상태 회복도 중요하지만 폐 상태의 회복 역시 중요하다. 환자는 개흉술을 한 후 인공호흡기를 한 채로 중환자실에 오게 되며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 환자의 생체 징후가 안정되고 환자 스스로 자발 호흡을 하는 게 부담이 되지 않고 잘할 수 있을 때 인공호흡기 이탈을 시도한다. 인공호흡기를 유지하는 동안 외부의 물체가 인체 내에 삽입되어 있었으므로 폐에 가래가 쌓이게 되고 이로 인해 열이 나게 되는데 인공호흡기 제거 후에는 폐렴으로 진행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환자 스스로 기침을 하면서 폐에 쌓여있는 가래를 뱉어내야 한다. 그러나 가슴을 열고 수술을 했기 때문에 기침을 할 때마다 상당히 아파하며 이로 인해 기침을 효과적으로 하지 못하고 결국 안 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통제를 투여하며 옆에서 기침을 격려하면서 가래를 뱉도록 유도하지만 잘 되지 않을 경우에는 필요에 따라 코에 흡인관을 넣어 가래를 빼주기도 한다. 통증이 너무 심해 기침을 안 하겠다는 환자, 기침은 하기 싫고 물을 많이 달라고 하며 잠만 자려고 하는 환자분들을 마주할 때 이해가 되면서도 나중에 상태가 악화가 될 게 보이니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다. 기침은 의사나 간호사가 대신해줄 수 없다. 힘들지만, 환자분들은 통증이 있더라도 의지를 가지고 기침을 해내야 한다.



둘째, 정서적 우울감으로 인해 살겠다는 의지가 점점 약해진다.



중환자실은 환자의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 감염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과의 면회도 점심, 저녁 각각 20분 정도밖에 진행할 수 없고 외부와 차단된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가 절제된 상황에서 개인의 의지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환자는 건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근데 이게 정말 쉽지가 않다. 물도 마음대로 못 마시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가고, 휴대폰도 사용하지 못하고, 가족이나 친구 같은 친한 사람들도 주변에 없는 온통 낯선 중환자실에서 우울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환자들을 대할 때면 침체되어 있고 우울감에 빠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수술 후 경과가 괜찮아서 하루 혹은 이틀 만에 일반병동으로 이동하시는 환자분들은 그나마 낫다. 그러나 부정맥이 교정되지 않는다거나 투석을 해야 한다거나 폐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경우와 같이 중환자실 care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중환자실에 3일 이상 재원 하게 되는데 재원기간이 늘어날수록 환자가 느끼는 우울감도 점차 깊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위로란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며 함께 있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물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으면 좋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노년기에 접어든, 그리고 중환자실에 3일 이상 재원하고 있는 우울감에 빠져 있는 환자분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은 너무 어렵다. 예를 들어 비교적 젊은 5,60대 환자분들에게는 '얼른 건강 회복하시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란다.'는 위로를 건넬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로 돌아가서 아직 일을 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있다.'는 소속감을 느낄 기회도 있다. 그러나 7,80대 환자분들은 어떠한가? 고령에다가, 상태 회복되는 속도도 더디다. 건강이 회복된다 하더라도 사회에 돌아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그리고 여기서 살리지 못하면 환자분들은 죽는다. (왜냐하면 외과는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보상이 충분하지 않고 이로 인해 외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으며 그중에서 흉부외과를 지원하는 의사는 매년 손에 꼽을 정도인데 이런 현상 때문에 흉부외과 중환자실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병원은 별로 없고 난도가 높은 수술 같은 경우 소위 big 5라고 불리는 병원에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몰리게 되었다.) 자신의 회복이 더디며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상태를 직면한 환자들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는 고작해야 20대 후반이고 내가 겪은 세상은 학교, 군대, 아르바이트, 취업, 이제 막 직장에 적응한 사회초년생의 세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환자분들이 느끼고 있는 우울감을 조금은 이해하면서도 완전히 알 수 없었고 환자분들에게 위로를 건넬 때마다 나는 내 위로에 힘이 없음을 느꼈다. '치료가 너무 힘들고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둬요.'라고 말하는 환자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설령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자신의 죽음만을 기다리며 쓸쓸히 집 안 한 구석 혹은 요양원 한 구석에서 쓸쓸히 시간을 보낼 환자분의 현실적인 상황이 너무 아프고 무기력을 느끼게 했다.


노년의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가치가 추앙받는 현시점에서 노년기에 접어든 분들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생각이 멈추지 않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들을 다른 사람들도 하지 않았을까라는 마음에 서점에 가서 노년에 관한 책들을 찾아봤다. 그중 노년의 의미(작가 폴 투르니에, 출판사 포이에마)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노년의 의미

폴 투르니에는 노년기를 가을로 비유한다. 겨울이 아니라 봄과, 여름에 충실하고 열정을 다해 열매 맺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이미지가 떠올라 가을이라고 비유한 것에서 나는 한 번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제2의 이력이라는 개념을 설명했는데 예를 들면 평범한 회사원으로 중년을 보냈지만 그 가운데 친구들과 동료들의 속마음을 잘 경청하고 위로를 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면 은퇴 후에 주변 이들에게 따뜻한 친구이자 상담가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회사를 오랫동안 이끈 CEO였다면 은퇴 후에 적은 보수를 받더라도 혹은 받지 않더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회사의 경영에는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되 자문을 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틈틈이 취미 생활을 해나간다면 나중에 그 취미가 제2의 이력이 될 수 있다. 최근에 할담비라고 불리는 지병수 할아버지가 그 예다. 지병수 할아버지를 바라볼 때 무슨 감정이 드는가? 세대를 아우르며 위로를 건네주시고 기분 좋게 하는 무언가가 지병수 할아버지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지병수 할아버지가 건강하시길 바라는 응원을 보내게 된다.


연예가중계 출연하신 지병수 할아버지와 손담비님.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늙어가고 있고 결국 노년기에 접어들기 때문에 당장 와 닿지 않더라도 나이 듦을 배워야 한다. 또한 노인분들을 경멸하고 필요 없는 존재로 치부하는 시선이 사회에 존재한다면 바꿔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상호 간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젊은이들은 노년기에 접어든 분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지혜와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랑을 발견하고 배운다면 좋겠고 노년기에 접어든 분들도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며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고 젊은이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더 많이 알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서, 무기력에 빠져있는 노년기에 있는 환자분들을 대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당신의 상황을 다 알지 못하고 공감하기엔 너무 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씀드리는 건 당신은 누군가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라고, 남은 생도 충분히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고. 그러니 힘내시고 회복하셔야 되지 않겠냐고. 이렇게 우울감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말뿐인 위로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환자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주고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함을 깨닫는다.


글을 쓰다 보니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밥도 못 먹고 1분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날도 많은데 그래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도 많은데. 환자들이 아파하고 신음하며 무기력해지는 그 모습을 외면하기 힘들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늘 기억하며 내일 출근해서도 기쁜 마음으로 노년기 환자분들에게 인사를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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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7-01 12: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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