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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비혼을 꿈꾼다면 - '당신의 엘리자베스'가 되기를 거부한다 <엘리자베스>
  • 기사등록 2022-12-06 14:57:10
  • 기사수정 2022-12-06 14: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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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사진출처 imdb.com봉건제와 가부장제의 법칙인 결혼을 거부했던 역사적 인물 중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다.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 헨리 8세는 <천일의 앤> 스캔들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우리로 빗대면 숙종과 장희빈쯤 아닐까. 헨리 8세는 앤 불린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앤 불린은 왕비와 왕이 이혼하는 구실이었다. 앤은 왕비 자리에 올라 딸 엘리자베스를 낳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장희빈이 훗날 경종이 될 아들을 낳고 사약을 받은 것처럼. 헨리 8세와 앤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역사적 사실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두 사람의 로맨스에 집중한 영화가 여러 편 있다. 실제로 헨리 8세가 집권한 시기는 왕권과 가톨릭 교회가 대립하던 시기였다. 가톨릭 교회가 왕권을 위협하던 시기로 이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헨리 8세는 앤을 이용해서 왕비와 이혼하고, 왕권을 가톨릭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헨리 8세가 앤을 죽도록 사랑해서가 아니라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앤을 이용한 측면도 있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 헨리 8세는 딸을 외면했고, 엘리자베스는 왕궁이 아니라 시골에서 자랐다.    


영화 <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의 왕인 이복 언니가 아픈 바람에 왕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 엘리자베스가 궁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언니가 죽은 후에 엘리자베스는 얼떨결에 왕좌를 이어받는다. 전쟁 중이었던 시기였고, 하루아침에 여왕이 되어 군사 통제권을 갖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엘리자베스는 신하들의 조언대로 군사를 파견했지만 대패해서 많은 군사를 잃는다. 새 여왕이 갈팡질팡할 때 왕실은 권력 다툼이 한창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의 말 한마디로 많은 생명이 죽은 걸 직접 겪고 혼란에 빠졌다. 여왕이 처음이라 여왕의 말이 가진 힘을 몰랐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살았던 16세기에 왕권은 절대적이었다. 


왕권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세력 다툼이 심해서 왕권이 바뀌면 반대파는 숙청을 당하곤 했다. 왕정 정치에서 개인의 힘이 막강했다. 왕의 말은 법이었고, 왕이 편애하는 사람 말도 곧 법이 되었다. 시골에서 뛰어놀던 엘리자베스는 궁에 들어갈 때, 함께 놀던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수행 시녀로 삼았다.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나랑 친하니까 청와대에 같이 가서 개인 수행 비서 해’라고 말할 수 있다. 왕은 신이 아니고 절대적 존재도 아니다. 다른 사람처럼 불완전해서 전쟁이 일어나면 두렵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흔들리는 존재이다. 여왕은 왕이기 전에 한 남자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왕이 되는 순간 사생활은 없어진다. 매일 밤 사랑하는 남자와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은 귀족들과 반대파들 사이에서 왕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이었다. 여왕이 보여주는 개인적 감정은 반대 당파가 이용하기 쉬운 약점이 되었다. 여왕의 연애와 결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토를 확장하는 다른 나라의 세력과 함수 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여왕은 귀족들의 조언을 받아들여야 했다. 잉글랜드의 통치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왕의 배우자감 후보에 오른 사람은 프랑스 여왕의 조카였다. 그는 개망나니였고, 여왕은 왕이 되기 전부터 사귀었던 로버트(조셉 파인즈)에게 사랑을 느꼈다.      


로버트는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나의 엘리자베스"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로버트는 애인이 여왕이 되자 그 지위를 이용해서 권력을 잡으려는 야심 많은 남자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죽는 걸 목격했다. 자신도 언제든 암살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 걸 보았다. 한 남자에게 그녀의 마음을 다 내어주는 일은 눈이 멀어지는 일이다. 눈이 멀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자신과 잉글랜드 국민을 죽음의 위험 속으로 던지는 일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어느 순간 엘리자베스 여왕은 로버트가 "나의 엘리자베스"라고 부르는 것에 반기를 든다. 지금도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사랑의 언어’로 해석되는 말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말이 왜 불편했을까? ‘나의 엘리자베스’라는 말속에는 두 사람이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까? ‘나의’란 말은 소유를 의미한다. 소유 주체가 있으면 종속된 사람이 있어야 성립되는 말이다. 여왕은 애인 로버트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나는 당신의 엘리자베스가 아니다. 나는 그 어떤 남자의 엘리자베스가 아니다. 당신이 날 지배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했다.

나는 정부mistress를 가졌지 주인master을 가진 게 아니다.





사진출처 top10films.co.uk

영화 이미지에서 엘리자베스의 표정이 변화하는 것이 보이는가. 왕위에 처음 올랐을 때 엘리자베스는 생기 있고 호기심 많은 여인이었다. 자신을 죽이려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해 가면서 엘리자베스의 표정은 굳어간다. 짙은 화장은 '철의 가면'처럼 기능한다. 엘리자베스의 인생은 공주로 태어나서 일반인처럼 길러졌지만 세습 왕권 시대에 왕이 될 운명이었다. 출생부터 순탄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의 인생은 커다란 파도 속에서 부서지고 마모되어 여왕이라는 공적 인생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왕은 "나는 잉글랜드와 결혼했다."라고 비혼을 선언했다. 여자가 왕이 되어서 왕실 관계자들이 자신의 결혼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일축하는 선언이었다. 그 당시 여성들에게 강요된 결혼과 출산의 의무를 거부했다. 21세기에도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의 의무를 지우려는 의식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16세기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통쾌하게 자기 결정권을 행사했다. 신분이 세습되는 시대에 여자지만 왕이어서 흔들리는 권위를 지켜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비혼으로 살고 마음껏 연애했기를.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위 때문에 주체적으로 살아가는데 많은 대가를 치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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