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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강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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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었다. 평균 성적이 중상위권 정도였던 내 친구는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친구는 시선이 닿는 모든 자신의 물건들에 'R=VD OO대학교 간호학과'라고 적어뒀다. 책을 가져 오지 않아서 교과서를 빌릴 때면, 그 친구 책이라는 것을 멀리서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또박또박하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R=VD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몰랐던 나는 그 친구를 계기로 비로소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대단하다, 용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커다란 포부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지 않는가? 그게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명확한 꿈과 목표는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특히나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고3은 그 목표가 더욱 또렷하고 간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자신의 꿈을 드러내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것 같다. 간호사를 희망했던 친구를 보고 대단하다, 용기 있다는 마음이 들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OO대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은 아니었다. 목표가 굉장히 높은데 '저렇게 공개적으로 밝혔다가 결과가 아쉬우면 어떡하나', '시선이 아무렇지 않은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친구는 결국 자신이 원했던 대학교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결과가 발표된 후에 우리 반은 굉장히 떠들썩했었던 기억이 난다. '걔가 거기 붙었다고?'는 한동안 단골 대사였다. 그때 내가 깨달았던 건 정말 간절히 원하면 안 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급식소에서 본 그 친구는 늘 영어 단어장을 보며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친구의 그런 피 같은 노력과 간절함이 결국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었을까.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2007년에 출간된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에는 R=VD 법칙이 소개되어 있다. 이때 R은 Realization(실현), V는 Vivid(생생한), D는 Dream(꿈)을 의미한다. 즉 생생하게 꿈꾸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자칫 허무맹랑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간절히 바라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자기암시가 주는 효과는 생각보다 엄청나다. 우리의 생각과 믿음은 실제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도출하기도 한다.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일종의 '자기 암시 효과', 즉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가 대표적인 예이다. 플라시보 효과란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가짜 약을 처방했을 때 환자는 병세가 호전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면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위약 효과' 또는 '위안제 효과'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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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이자 심리 치료사인 에밀 쿠에는 어느 날 지인에게 "시간이 늦어서 병원에 갈 수 없으니 약을 처방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하지만 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을 줄 수는 없었다. 결국 쿠에는 지인에게 "이 약을 먹으면 괜찮을 테니 내일은 꼭 병원에 가라"고 당부하며 약 대신 인체에 무해한 포도당류 알약을 주었다. 며칠 뒤 그의 지인은 쿠에를 찾아와 "전에 준 약이 아주 용해서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쿠에는 약을 먹으면 병이 호전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말과 약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자기암시를 통해 실제로 병이 나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웠으며, 향후 많은 연구가 이를 증명하면서 플라시보 효과가 실제로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플라시보 효과는 일종의 잠재의식적 자기암시이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잠재의식에 대해 우리의 의식 아래에 존재하는 감춰져 있는 신비한 힘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잠재의식이란 의식과는 상대적이지만 상호작용하며 의식이 잠재의식을 통제해 서로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였다. 잠재의식은 무궁무진한 힘을 갖고 있고,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심리학에서 '암시'란 사람 또는 환경이 개인에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정보를 보내면, 개인은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이며 이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는 심리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간접적이고 함축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심리 상태에 신속하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I can do it !



자기암시의 대표적인 사례는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펜싱 결승전을 치르던 박상영 선수의 에피소드를 들 수 있겠다. 그는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4점 차이로 지고 있었지만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다고 한다. 결국 박상영 선수는 마지막 경기에서 5점을 연달아 득점하며 기적의 역전승을 선보였다.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이렇듯 우리의 생각과 정신, 그리고 믿음은 우리의 감정을 비롯하여 행동, 그리고 행동에 따른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극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의심의 여지 없이 '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믿어야 할 필요가 있다. 좋아질 거라고 믿으면 정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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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심리편]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80792&cid=58345&categoryId=58345

정신의학신문 [기적의 역전승을 만든 자기암시]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3434

장원청, 김혜림. (2020).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미디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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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1-14 1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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