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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강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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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정보들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일을 가장 최우선으로 믿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인과 서로 대화를 나누며 함께 길을 걷고 있다고 가정하자.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앞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워낙 빠르게 지나가서 자세히는 못 봤지만 틀림없는 고양이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지인이 '강아지'가 귀엽다며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깜짝 놀랐다고 얘기한다.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실은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였다고 말해주고 싶지 않은가?


자신이 직접 겪은 일들은 한 치의 의심 없이 온전히 믿어도 되는 걸까? 사실 못 믿을 이유는 딱히 없다. 왜냐하면 경험은 객관적인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그의 저서 《진정한 사람되기》에서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때는 "개인적인 경험이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경험이 타당성의 기준이 된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마따나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배운 것만큼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드물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경험에 입각하여 자신의 지성과 판단력을 믿는다. 그리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선택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종종 우리를 배신하곤 한다. 내가 고양이라고 믿었던 동물은 사실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였던 것이다.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안타깝게도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얼마나 큰 착각 속에 빠져 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인간은 보고자 한 것만 볼 수 있고, 듣고자 한 것만 들을 수 있는 근시안적인 생물이다. 어느 한 가지에만 몰입하다 보면 나머지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한다. 무주의 맹시란 극도로 집중해서 무언가를 관찰할 때 관심 밖의 대상은 아무리 그곳에 있더라도 전혀 보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로,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였던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실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두 팀으로 나누어진 6명의 학생들이 서로 농구공을 패스하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흰색 옷을 입은 학생이 공을 몇 번 패스하는지 세도록 지시했다. 이 동영상에서 주목할 점은, 영상 중간에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학생들 사이를 가로질러 유유히 걸어가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슴을 두드리며 동작을 취하기까지 한다.


영상을 본 실험 참가자들에게 "고릴라를 보았냐"고 묻자, 절반 이상이 고릴라를 전혀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심지어 개중에는 결코 고릴라가 없었다며 영상을 조작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비록 고릴라가 화면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농구공 패스 횟수는 정확하게 세었다. 그들이 집중했던 것은 고릴라가 아니라 농구공이었기 때문이다.


로빈 M. 호가스(Robin M. Hogarth)와 엠레 소이야르(Emre Soyer)가 집필한 저서 《경험의 함정》에서는 이 실험의 정반대 경우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똑같은 동영상을 두고 참가자들에게 농구공 패스 횟수를 세면서 고릴라를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결과적으로 참가자들은 고릴라는 쉽게 발견했지만, 공의 패스 횟수를 정확하게 세기 힘들어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통해 밝혀진 인간의 주의력의 명확한 한계점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다.



우리 모두는 엄연히 인지 능력에 한계가 있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들은 감춰진다. 농구공에 집중하면 고릴라는 자연스레 가려진다. 반대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정보라고 한들, 그것이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직접 겪은 일이라면 곧이곧대로 믿어도 되는 걸까? 농구공의 패스 횟수에 집중한 나머지 미처 지나가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더라도 그 영상에 고릴라가 등장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내가 고릴라를 못 봤다고 해서 고릴라가 없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첫 문단의 예시로 돌아가자. 당신은 지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고양이 한 마리가 그 앞을 쏜살같이 지나간다. 크기나 움직임의 속도 등을 미루어 봤을 때 높은 확률로 고양이가 맞다. 하지만 그것이 고양이었다고 100% 장담할 수 있을까? 없다. 설령 고양이가 맞았다고 한들 자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늘 수많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죄수들은 벽면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실재라고 여긴다.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도 실재가 아닌 그림자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착각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인지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매사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임한다면 동굴에서 그림자를 두고 진리라 외치는 사람에 그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 대니얼 사이먼스. (2011). 보이지 않는 고릴라. 김영사

로빈 M. 호가스 / 엠레 소이야르. (2021). 경험의 함정. 사이

칼 로저스. (2009). 진정한 사람되기. 학지사

NAVER 지식백과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 [보이지 않는 고릴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66852&cid=51043&categoryId=5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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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2-25 20: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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