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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양현서 ]


 

어느 날 다른 이들과 함께 문명과 동떨어진 외딴섬에 표류하게 된다면, 우리는 힘을 합쳐 공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문명 속에서 그랬듯 질서를 수립할 수 있을까. <15소년 표류기>로 시작해서 <산호섬>, <더 소사이어티> 등 이런 질문에 대해 답한 작품은 꾸준히 등장해왔다. 보통 이런 종류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한데 모아 이들을 극한 환경에 몰아넣는 데서 시작된다. 위기 상황에 대해 어떤 예행연습도 거치지 못한 인물들은 내면 깊숙이 숨겨둔 본모습을 여과 없이 나타낸다. 사회적 체면을 위해 살포시 얹어두었던 가면이 벗겨졌을 때 시청자들은 인간 본성의 양면적인 부분과 마주하게 된다. 이렇듯 원초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내면이 집단 생존에 미치는 바는 작품을 쓴 저자의 생각에 따라 천태만상이다. 그러나 인물들을 무인도에 영영 갇히게 하는 것도, 탈출하게 하는 것도 결국 그들의 ‘본성’이라는 점에서 해당 작품들의 주제는 공통점을 지닌다.




소설 <파리대왕>을 통해 본 ‘군중심리’


 사진출처·네이버 도서

윌리엄 골딩이 쓴 소설 <파리대왕>은 문명과 동떨어져 외딴섬에 갇힌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이야기 속에서 결국 사악한 인간성이 내면에 숨겨진 본성임을 시사한다. 섬에 표류한 아이들은 결국 집단 내의 질서를 수립하지 못한 채 갖가지 갈등을 겪으며 분열하게 된다. 작품 초반만 해도 위기 상황을 함께 헤쳐 나갈 든든한 동반자로 여겨진 공동체가, 말미에 가서는 악몽 같은 존재로 변모한 것이다.


<파리대왕>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아이들이 결성한 사회 공동체 속에서 발생하는 ‘군중심리’다. 군중심리란 많은 이들이 모였을 때 자제력을 잃거나 타인의 말과 행동에 따라 움직이는 특수한 심리상태를 뜻한다. 이와 같은 심리상태는 특정한 감정만을 격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까지 우리는 타인과 소통하며 수많은 의견과 감정을 마주한다. 그렇게 마주한 생각들을 서로 타협하며 조율하는 과정은 사회 질서를 수립할 시 필수적이다. 이런 과정을 도외시한 채, 단지 우세해 보인다는 이유로 특정 의견에 휩쓸린다면 다른 구성원들의 의사를 타진할 기회가 사라지게 된다. 결국 최종 결정권자만이 목소리를 내는 구조가 자리 잡아 다양성이 없는 획일적인 사회가 구성될 수 있다.


군중심리가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자칫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군중심리에 사로잡히게 되면 집단이 비이성적인 존재임을 망각하게 된다. 개개인과 달리 집단은 합리적이지 못한다. 그렇기에 특정 감정이 강조되는 듯 보이면 그런 흐름에 편승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유럽 역사에 자행된 대규모 학살 행위인 ‘마녀사냥’이 대표적 예시다. 때로는 집단이 없던 죄악을 개인에게 부여하기도 하고, 죄의 크기를 몇 배나 더 불리기도 한다. 모든 군중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사를 살펴보면 분명 빈번하게 일어난 일들이다.

 



현대사회 속 ‘섬’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섬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군중심리를 통해 집단의 양극화가 일어나는 외딴섬은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현대사회에 이런 섬 같은 곳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소통 공간이 확장되며 군중심리가 발현될 여지가 더욱 많아졌다. 익명성이 기반한 인터넷상의 교류, 갈수록 확대되는 인터넷 공론장 중심의 소통 등이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섬이 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의 대화는 자칫 의견 양극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온·오프라인 소통 공간 속 집단의 양극화를 막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문화의 성립이 필수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화 과정에서 마주하는 이견과 직면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역시 수반되어야 한다. 낯선 생각을 무작정 거부하는 대신 이를 자신의 것과 비교하며 조율한다면 나만의 ‘섬’에서 탈출할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로버트 밸런타인의 소설 <산호섬>은 섬에 표류하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파리대왕>과 유사하나 당도한 결말의 방향은 전혀 달랐다. <파리대왕>과 달리 이 작품 속 아이들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을 통해 합리적으로 교류하며 별다른 문제 없이 하루하루 생존해나가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무수한 소통 과정을 겪으며 사회가 때로는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산호섬’일 수도, 특정한 생각에 압도되는 <파리대왕> 속 무인도일 수도 있음을 실감하곤 한다. 우리 사회가 향하는 결말이 어디일지는 예상할 수 없으나, 그곳이 산호섬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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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현숙. (2005). 『파리 대왕』에 나타난 선과 악의 갈등. 수원대학교

나은영, 차유리. (2012). 인터넷 집단극화를 결정하는 요인들: 공론장 익명성과 네트워크 군중성 및 개인적, 문화적 요인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및성격심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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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17 21: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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