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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스테르담 ]



'반복'은 저주일까?


시시포스는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야 한다. 정상에 오르면 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려야 한다. 아래로 굴러내려간 돌을 바라보는 시시포스의 서글픈 눈빛이 친히 상상이 된다. 터덜터덜 내려와 그것을 다시 밀어 올리는 뒷모습을 생각하면 측은한 마음이 눈 앞을 가린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간을 조정해 영원히 반복되는 타임루프 속에 도르마무를 가둔다.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 왔다!"


도르마무의 존재감은 절대적인 공포 그 자체다. 멀쩡한 차원을 '어둠의 차원'으로 만든 장본인이자, 수천 개의 차원을 식민지로 둔 존재다. 그런 도르마무가 '반복'이라는 루프에 갇힌 걸 알아차리고는 쉽게 백기를 들고 만다. 시시포스가 돌을 밀어 올리는 데자뷔를 봤던 걸까?


이쯤 되면, '반복'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 앞에선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도 무릎을 꿇고 만다.


이젠, 직장인인 나를 바라본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한다. 같은 시간 차에 오르고, 비슷한 시간에 사무실에 도착해 일을 시작한다. 위로부터 오는 압박과, 아래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무한 반복이다. 매출은 오르락내리락 입사 때와 똑같다. 월급은 오른다고는 하지만, 매년 느끼는 기분은 틀린 그림 찾기다.


간간이 튀어나오는 'ad hoc'성 사건(?)들이 생활의 변주를 주려는 듯 하지만, 어쩐지 그것들도 친숙한 무엇이다. 출퇴근의 반복은 사계절의 날씨에 따른 복장 변화만 있을 뿐, 그저 똑같다. 나는 충분히 '무한루프'속에 갇힌, '반복'을 반복하고 있는 존재다. 시시포스나 도르마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직장인이란 존재는 이처럼 숨 막힌다. 


그리고 숨 막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반복'되는 일상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고, 취미를 찾아다니거나 때론 이직과 퇴사를 한다. 다른 어딘가에는 좀 더 괜찮은 무엇이 있을 거라는 기대, 이렇게 '반복'만 하다 보면 숨 막혀 죽을 거란 두려움이 직장인인 우리의 등을 떠민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난 시시포스나 도르마무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영원'을 전제로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난 언젠간 죽는다. 그리고 난 언젠간 퇴사나 은퇴를 하게 된다. 그 형벌(?)을 더 받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날이 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관점'이 바뀐다. 과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반복'의 의미는 뭘까?


'과정'이란 말이 떠오른다. 시시포스와 도르마무에게 주어진 '반복'은 '끝'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저주'였다. 하지만 유한한 내게 주어진 '반복'은 '과정'이다. '반복'은 나에게 '생활 근육'을 선사했다. '반복'을 통해 일을 습득하고, 각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경험을 갖추게 되었다. '반복'이 주는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돌아올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은 나를 숨 막히게 하지만, 반대로 내가 숨 쉬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오늘 하루가, 지금 이 순간의 '반복'이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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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9-07 08: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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