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양현서 ]



디스토피아 영화, 그중에서도 좀비물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


 

 

우리는 왜 좀비물이나 재난재해 영화처럼 인류 재난 서사를 소재로 다룬 디스토피아 장르에 열광할까. 종말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멸망 뒤 세상에 대한 본능적인 궁금증 등의 이유도 있겠으나 단연 중요한 요소로는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꼽을 수 있다. 디스토피아 영화는 평소 인식하지 못했던 인간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고찰할 기회를 마련해준다. 단순히 좀비에게 쫓기고 해일에 휩쓸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부각하는 것이 이 장르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 동고동락하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마주하며, 우리는 그간 간과했던 사회적 연결 고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디스토피아 영화 중에서도 인간성이 가장 돋보이는 장르물은 좀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해당 작품에서는 자유의지를 잃어버린 좀비들과 자립성을 가진 인간의 대립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두 부류의 존재에 대한 대비를 통해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는 더욱 강조된다. 이렇듯 인간성 유무의 확연한 차이는 좀비물이 등장한 이래 지속해서 두터운 팬층을 유지할 수 있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인간 본성의 중요성을 다루는 차별화된 방식은 다른 디스토피아 장르물에서는 볼 수 없는 뚜렷한 개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와 현실적으로 맞닿아 있는 입체적인 세계관 역시 해당 장르가 사랑받는 원인 중 하나다. 21세기 현대사회는 인간성의 중요성이 특히 대두되는 시기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대유행)은 비대면 사회의 형성을 가속화 및 장기화했다. 사회 구성원 간에 상호작용은 온라인에서 더욱 활발히 이뤄지며, 정치·경제·환경 등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위기가 반복된다. 이런 사회 속에서 구성원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공포감은 좀비가 창궐해 혼란한 세상에서 매일 간신히 버텨낸 생존자들이 느낄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좀비물은 현대사회 속 약해지는 인간성을 작품 속에 자연스레 녹여 시청자들이 이에 몰입 및 재고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

 



영화 <워킹 데드 나잇>,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말하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워킹 데드 나잇>은 파리의 낯선 건물에 홀로 갇힌 한 남자의 심리변화를 그린 좀비물이다. 이 작품 역시 위에서 설명한 해당 장르의 인기 비결을 철저히 따라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여타 작품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인간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주제는 유지하되 좀비와 인간의 특성을 비교하는 공식을 깬 것이다. 


대부분의 좀비물은 내용적 차이는 존재하나 그 흐름에 있어서는 비슷한 양상을 띤다. 평화로운 세상에 어느 날 좀비가 나타나는 것이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주인공은 혼란해진 세상 속 갖은 풍파를 만나며 다양한 인간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한데 모여 조직을 이루고 위협적인 요소들을 극복해가며 유토피아로 향한다.


반면 <워킹 데드 나잇>은 주인공을 철저히 고립시켜 인간성이 발현할 기회조차 차단해버린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인간성을 부각하는 요소는 좀비나 악한 인간 무리가 아닌 ‘고독’에 내포된 공포감이다. 모든 소통 경로가 차단된 채 서서히 망가져 가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인간성을 완성하는 타인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타인이 존재하지 않다면 인간성을 갖춰야 할 이유도, 발현할 기회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사회적 고립은 인간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주인공인 샘은 영화 중반까지 혼자 드럼을 치고, 음식을 모으고, 건물을 비운 뒤 조깅을 즐기는 등 하루하루 악착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타인의 부재가 만들어낸 마음속 공백은 예상외로 컸다. 공백이 만들어낸 외로움은 샘을 잠식해버린다. 결국 그는 사람에 대한 갈망을 견디다 못해 이미 죽은 자의 환영을 보는 지경까지 이른다. 좀비로 인해 생긴 소통의 벽은 인간성의 발현을 저하해 죽음과 삶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샘은 상호작용도 관계도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삶의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디스토피아에서 깨닫는 타인의 존재


 

이는 비단 영화 속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연구진은 사회적 고립이 뇌에 특정 화학물질의 축적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화학물질의 축적을 예방할 경우 고립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를 통해 보듯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인간성 발현의 저하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샘이 겪은 ‘고립으로 인한 고통’은 현대사회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문제다. 독거노인의 사회적 소외 문제는 최근 들어 청년 세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만 18세~34세 청년 가운데 약 37만 명이 사회와 고립돼 생활하고 있었다고 한다. 경쟁 사회 구조, 직장 내 따돌림 등 좀비가 없는 사회에서도 타인의 존재가 무용하게 느껴져 ‘혼자’를 선택할 이유는 다양하다. 


어쩌면 디스토피아물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재정의가 아닐까. 인간이 서로 모여서 소통하고 협력하며 때로는 갈등하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모습들이, 디스토피아에서는 뼈저리게 갈망해야 할 특별한 일로 다가오니 말이다. 일상을 살며 종종 지옥 같은 존재로 규정되는 타인에 대한 감사를 좀비 영화를 보며 깨닫는다.




참고문헌

성신형. (2020). 한국적 좀비사회 내러티브 분석과 기독교사회윤리적 접근.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김성범. (2014). 21세기 왜 다시 좀비 영화인가? = 잠재태와 현실태의 현현(顯現) 개념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Caltech. (2018). How Social Isolation Transforms the Brain | www.caltech.edu

TAG
1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5747
  • 기사등록 2023-02-27 07:52:19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