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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이해연 ]




폭 따뜻해진 날씨와 길어진 해. 겨울이 지나고 있다. 눈이 소복 쌓였을 때 우리는 어김없이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렇게 오리와 삼단 눈사람이 등장했고 각종 캐릭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들. 열심히 만들어 완성 직전이던 눈사람이 그들에 의해 부서졌다. 요 몇 년간의 겨울 동안 그런 내용의 영상을 우리는 눈사람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로 부쉈고 때로는 욕설을 남기기까지 했다. 영상은 눈사람을 만들던 사람의 울음소리로 마무리된다.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21년 즈음이다. 단지 한 해의 에피소드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반복되고 있는 이 행동 양상에 대해,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공경식 교수는 일종의 사회적 피해의식이 깃든 행동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공경식 교수는 눈사람을 만든 사람이 받게 될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배려와 공감 능력이 없는 행동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관심과 성취감을 얻기 위한 행동이라는 분석을 내리기도 했다. 성취 경험이 적고 타인의 관심을 받을 기회가 적은 사람이라면 이를 손쉽게 얻기 위해 눈사람을 부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편 단순히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쾌락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 행동이 단 하루, 단 한 번의 장난에 그친다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파괴적 행동이 반복되고 그 대상이 확장된다면 이는 주목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반사회성 성격장애, 이른바 ‘사이코패스’로 불리는 유형의 사람들은 타인의 안전과 감정에 배려가 없고 타인의 권리를 쉽게 무시한다. 또 타인을 해치며 별다른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한양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는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파괴 행위 대상이 눈사람 같은 사물에서 점차 길고양이나 강아지, 사회적 약자 등으로 번질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파괴를 즐기는 카타르시스를 가지고 있고, 폭력을 해소하는 존재’이기에 눈사람 부수기 행동은 단지 그러한 양상을 가진 행동 중 하나라는 의견이 있기도 했다. ‘뽁뽁이를 터트리거나 볼링핀을 넘어뜨리는 행동 역시 폭력성을 잠재한 행동이기에, ‘눈사람 부수기’ 논쟁을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는 파괴적인 본성이 숨겨져 있다고 밝혔다. 그에 의해 생겨난 ‘타나토스’는 인간의 내면에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파괴해 무(無)로 돌리고자 하는 속성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개념이다. 이는 일종의 ‘죽음의 본능’으로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을 설명한다. 동물행동학자 콘래드 로렌츠는 치열한 먹이 피라미드의 세계 속에서 생존한 동물 누구에게나 폭력성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안의 폭력성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여러 심리학 책으로 사랑을 받은 스티븐 핑커는 그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말한다. 인간은 수많은 역사적 과정에서 점점 줄어드는 폭력성을 보인다고 말이다. 이는 인류의 수많은 노력의 결과이며 앞으로도 그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인간은 본래 폭력적인 성향과 함께 평화의 성향, 선한 마음 또한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니 눈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뽁뽁이도 볼링핀도 그것을 파괴했을 때는 고통받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눈사람을 부쉈을 때는 다르다. 눈사람 너머에 고통받는 사람이 존재한다. 정성 들인 시간과 애쓴 마음이 쉽게 무시되는 세계. 동심이 차이고 순수함이 밟히는 세계. 그런 세계에서 고통과 폭력은 대게 약자가 짊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그것에 대한 감수성은 얼마든지 민감해도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약자가 지워지고 분노의 대상이 약자가 되는 사회의 모습이 다만 낯설어지기를 바란다.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겨울에는 부서지는 눈사람이 없기를, 모두가 저마다의 속도로 그저 녹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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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SBS NEWS, [Website], 『범죄심리학자에게 "눈사람 파괴자 인성 vs 위험한 눈사람 메이커 인성" 물어봄!』, 2021,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581457

2. 한국경제신문 생글생글, [Website], 『인간의 폭력성…내재적일까 환경의 산물일까』, 2012,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12042703671

3. 스티븐 핑커, (2014),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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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27 19: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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