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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도윤 ]



“근데 내가 뭐하고 있었지?” 


이는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나드 쉘비의 대사이다. 아내의 살해 이후 단기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그는 10분이 지나면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사고 이전의 기억은 선명하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사라지는 '순행성 기억상실증’의 사례다.

 



레나드 쉘비와 제이슨 본: 두 주인공의 차이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기억상실증은 '역행성 기억상실증(retrograde amnesia)'이다. 이는 과거의 정보를 회상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주인공 제이슨 본은 사고 후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전형적인 역행성 기억상실증 환자다. 그는 사고 이후의 기억은 유지하지만, 사고 전의 기억은 떠올리지 못한다. 때때로 잊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단편적으로 떠올리기도 한다. 제이슨 본처럼 역행성 기억상실증 환자들은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떠올리며, 다시 기억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순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 환자들은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한다. '메멘토’의 레나드 쉘비처럼, 이들은 과거의 기억은 회상할 수 있지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특징을 가진다.

 



'메멘토’의 모티프가 된, 환자 H.M의 이야기


'메멘토’는 실제 인물인 H.M’으로 알려져 있는 헨리 몰레이슨(1926~2008)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이다. 간질 발작을 멈추기 위해 뇌 절제 수술을 받은 그는 해마 부위의 손상으로 인해 수술 후 55년 동안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얻게 되었다. 수술 이후 지능 및 감각, 운동 기능은 모두 정상이었고, 성격 또한 수술 이전과 같았다. 수술 전후 달라진 것은 오직 기억뿐이었다. H.M은 약 30초 동안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기억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순간, 방금 있었던 일을 잊어버렸다. 이는 장기기억으로의 전환을 담당하는 신경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 수잰 코르킨은 "나는 1962년부터 H.M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라고 전했다.


특이한 점은, H.M은 외현기억 과제에서는 저조한 성과를 보였으나, 암묵기억을 필요로 하는 과제에서는 정상 수준의 성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외현기억은 ‘방금 외웠던 영어 단어’처럼 의식 수준에서의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을, 암묵기억은 의식하지 않고도 기억 정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암묵기억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젓가락질과 사칙연산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는데, 젓가락질과 사칙연산을 수행하는 절차에 대한 지식 자체는 외현기억, 이를 수행하는 능력은 암묵기억이라 부른다.


H.M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기억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예시로 활용될 수 있다. 어려운 난이도의 숨은 그림 찾기 과제를 수행할 때, H.M은 처음 시도보다 나중에는 그 그림을 신속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거울에 비친 단어를 읽는 과제 역시 반복함으로써 점차 능숙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H.M이 자신이 학습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과제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섀핀의 연구에서도 H.M은 "이런, 참 이상하군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가 굉장히 잘 한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고 보고되었다.



수술의 부작용으로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한 H.M은 나이에 대한 질문에 항상 "27세"라고 답했다. 수술 이후의 기억은 30초밖에 지속되지 않는 부작용은 H.M에게는 재앙이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H.M의 존재는 신경과학 분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비록 그는 자신의 명성과 자신의 연구 참여가 전 세계 과학 및 의학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지만, 코르킨의 연구를 통해 "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H.M의 말처럼 그의 삶은 기억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참고문헌

데이비드 G. 마이어스, C. Nathan DeWall. (2016). 마이어스의 심리학개론. 서울: 시그마프레스.

Shapin, S. (2013). The man who forgot everything. New Yorker, 14, 113-21.

Corkin, S. (2002). What's new with the amnesic patient HM?. Nature reviews neuroscience, 3(2), 153-160.

Salat, D. H., Tuch, D. S., Greve, D. N., Van Der Kouwe, A. J. W., Hevelone, N. D., Zaleta, A. K., ... & Dale, A. M. (2005). Age-related alterations in white matter microstructure measured by diffusion tensor imaging. Neurobiology of aging, 26(8), 1215-1227.

Squire, L. R. (2009). The legacy of patient HM for neuroscience. Neuron, 61(1),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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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5-09 08: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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