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서
[한국심리학신문=이윤서 ]
군중 속 개인의 이성 상실, 범죄 심리학이 밝히는 탈개인화의 비밀
최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집단 폭력과 사이버불링 현상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 있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범죄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은 이 같은 현상을 ‘군중심리’와 ‘탈개인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개인은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고, 책임감과 도덕성마저 약화되어 비이성적인 행동에 휩쓸리기 쉽다.
1895년 르 봉(Gustave Le Bon)은 군중 속 개인이 ‘익명성’과 ‘감정 전염’에 쉽게 휘말리며, 이성적 판단을 잃는다고 보았다. 군중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개인이 집단의 심리에 동화되어 평소와 전혀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의견 동조를 넘어 ‘자아 상실’과 ‘책임 분산’을 가져온다.
현대 심리학의 대표 실험인 짐바르도(Zimbardo)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이러한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참가자들이 교도관과 수감자 역할을 맡자, 몇 일 만에 교도관들은 잔혹한 행동을 서슴지 않게 되었고, 수감자들은 무력감을 경험했다(Drury et al., 2022). 이 실험은 권위, 역할 수행, 그리고 군중 속 책임 분산이 개인을 전혀 다른 존재로 변모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다.
군중심리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강력히 작용한다. SNS와 인터넷 공간은 익명성과 확산 속도를 극대화하며, 사이버불링과 온라인 집단 괴롭힘을 야기한다. Reicher & Stott(2020)은 온라인 군중이 빠르게 폭력적 언행에 동조하고 확산시키는 현상을 분석하며, 이는 집단 내 ‘감정 증폭’과 ‘탈억제’ 효과가 결합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유명인들의 악플로 인한 극단적 선택 사례는 단순한 개인 문제를 넘어서, 집단적 심리 기제가 작동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임을 시사한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책임감이 희석된’ 익명 군중이 도덕적 판단을 무시한 채 공격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Kondo & Tanaka(2024)는 집단 규모가 커질수록 개인의 범죄 책임 인식이 감소하고, 피해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보고했다. 특히 청소년 범죄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각하며, 다수의 가해자가 모이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공감 결핍으로 폭력 행위를 정당화하기 쉽다.
이는 청소년 범죄 예방에서 단순한 법적 처벌보다 심리적 개입과 ‘개인화’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집단 속에서 자신을 ‘나’로 인식하게 만드는 훈련과 공감 능력 향상이 범죄 억제에 효과적이라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군중심리 현상은 단순한 우발적 충동이 아니다. 감정이 집단 내에서 쌓이고 증폭되면서 폭력으로 폭발하는 과정이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와 폭동은 집단 내 분노가 어떻게 행동으로 표출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Drury 외(2022)는 이러한 도시 간 폭동 확산 과정에서 경찰 대응이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한다. 과도한 강경 대응은 군중의 반발심을 키우고 폭력 악순환을 초래하는 반면, 신중한 중재와 소통은 군중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전문가들은 집단 내 비윤리적 행동을 막기 위해 ‘역할 인식 강화’, ‘책임 명확화’, ‘감정 조절 훈련’을 권장한다(da Costa et al., 2023). 학교, 군대, 직장 등 다양한 조직에서 ‘집단이 아닌 나 자신’으로 행동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점차 도입되고 있다.
또한 익명성을 완화하는 제도적 장치도 중요하다. 온라인 실명제 강화, 신고 시스템 정비, 그리고 AI를 활용한 악성 게시물 모니터링 등이 사이버 공간에서 심리적 억제를 돕는다. 이러한 조치들은 집단 속 개인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느끼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을 버리는 일이다. 군중 속에서 누구나 판단이 흐려지고 책임감이 희미해질 수 있다. Patel(2024)는 개인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순간 멈춰 서서 자각하는 ‘심리적 거리 두기’ 훈련을 강조한다.
범죄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의 연구는 개인의 자각과 사회적 구조가 함께 작동할 때, 군중심리의 어두운 면을 극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집단이 아닌 ‘개인’의 윤리와 책임이 살아있는 사회,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참고문헌
1. Drury, J., Novelli, D., & Stott, C. (2019). Psychological perspectives on collective behavior and mass emergencies. Current Opinion in Psychology, 28, 105–109.
2. Garaigordobil, M., & Aliri, J. (2020). Cyberbullying, psychological adjustment, and social skills in adolescents.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17(9), 3143.
3. Patel, S., & Kumar, R. (2023). The effects of self-awareness training on reducing aggressive behaviors in group settings. Journal of Social and Clinical Psychology, 42(3), 210–225.
4. Zimbardo, P. G. (2019). The psychology of evil: Revisiting 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 American Psychologist, 74(9), 1025–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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