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림
[한국심리학신문=고예림 ]
CJ ENM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수많은 갈래길에서 한 걸음씩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도 있고, 비교적 안정적인 선택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확실하고 내 뜻대로 결정할 수 없으며, 타인의 승인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들이다. 대학, 취업, 승진, 결혼, 심지어 상견례 자리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승인받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때때로 무력감을 준다. 특히 한국의 청년들은 선택하기보다 평가받는 입장에 더 가깝다. 그리고 ‘거절’은 이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이 됐다.
청년들이 ‘거절’당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라면, 이미 수십 번의 거절을 경험했을 것이다. 스펙을 쌓고, 자격증을 따고, 면접을 준비해도 “아쉽게도 이번 기회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청년들은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선택권이 아닌 ‘심사’를 받고 있다. 한 구인구직 플랫폼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만 되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응답이 절반이 넘었다.
고용률은 전체적으로 오르고 있지만, 청년 고용률만은 14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거절이 반복되면 사람은 점점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실패를 넘어선 고통, 부정당함, 소외감이 마음에 남는다. 청년들에게 거절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존재를 흔드는 감각이 된다.
거절은 ‘진짜 고통’이다
심리적인 아픔이라고 덜 아픈 게 아니다. 뇌는 감정과 육체의 고통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UCLA의 뇌과학자 나오미 아이젠버거(Naomi Eisenberger)는 ‘가상 공놀이 게임(Cyberball)’을 통해 이 사실을 밝혀냈다. 참가자들이 게임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면, 신체적 통증을 처리하는 뇌 부위인 전측 대상회(ACC)가 활성화된다.
즉, 사회적 거절은 단순히 기분 나쁜 일이 아니라, 뇌에겐 신체적 고통처럼 느껴지는 생물학적 자극이다. 청년들이 입시, 취업, 인간관계에서 반복적으로 탈락을 경험할 때마다, 그들은 감정이 아닌 ‘진짜 통증’에 가까운 고통을 겪는 것이다.
거절의 고통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아픈 감각’은 지금의 상황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관계 경험, 특히 어린 시절의 애착 관계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은 이를 ‘애착 기반 감각’으로 본다.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거절당했을 때 더 쉽게 상처받고, 더 크게 반응한다. 심리학자 다우니(Downey)와 펠드먼(Feldman)은 이런 특징을 ‘거절 민감성’(Rejection Sensitivity)이라 명명했다. 작은 반응에도 쉽게 위축되거나, 실제로 아무 일도 없는데 먼저 거절을 상상하고 대비하는 태도다.
임상심리학자 레슬리 베커 펠프스 박사는 애착 문제를 겪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거절에 과도하게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똑같은 상황도 누군가는 쉽게 넘기고, 누군가는 깊은 상처로 받아들인다. 거절의 고통은 단순한 현재의 반응이 아니라, 과거의 감각이 되살아난 결과다.
“어떻게 견딜까”가 아니라 “왜 반복될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청년들이 거절을 힘들어하는 건 당연하다. 멘탈이 약해서가 아니다. 거절은 뇌가 ‘신체적 통증’처럼 인식하는 자극이고, 반복되면 누구라도 지친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경험이 쌓이면 사람은 점점 작아진다. 그런데 이 고통을 “참고 견디자”는 말로 넘기기엔 무리가 있다. 지금 청년들은 삶의 거의 모든 지점에서 평가받고, 선택받기를 강요당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위한 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채용 게시판을 보는 취준생들/헤럴드경제
고용률은 오르는데 청년 고용률만 하락하는 현실은 개인의 노력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선택받는 사람’만 살아남게 만든 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견딜 것인가”보다 “왜 이렇게 자주 거절당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청년들이 계속해서 문밖에 서 있는 이유는 개인의 부족함이 아니라 사회가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이끌 청년들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참고문헌
1) 김경호, 취준생 55.2% "어디든 관계없다"···다음달 대규모 채용박람회, 동아사이언스, 2025.02.03.,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3738
2) 김정우, "청년 일자리, 씨가 말랐다"...취준생들의 '한숨', 한경비즈니스, 2025.07.16.,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507161637b
3) 박진영,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 동아사이언스, 2024.02.10., https://www.ktv.go.kr/content/view?content_id=72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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