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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건 아니야": 우리가 선택할 때 사용하는 제거의 심리학 - 완벽한 선택보다 '덜 나쁜' 선택을 찾아가는 인간의 마음
  • 기사등록 2025-08-07 10: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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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조민서 ]



금요일 저녁, 친구들과 저녁 식사 장소를 정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일식은 어때?" "아니야, 너무 비싸." "그럼 중식은?" "MSG 때문에 안 좋아해." "피자는?" "다이어트 중이라서..." 이렇게 하나씩 제외해가며 결국 남은 선택지 중에서 식당을 정하게 된다. 이런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사결정 방식을 심리학에서는 '비모충 모형(Elimination by Aspects Model)' 또는 '요인별 제거법'이라고 부른다. 1972년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제시한 이 이론은, 인간이 복잡한 선택 상황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모델 중 하나다.



장점보다 단점에 주목하는 인간의 뇌


비모충 모형의 핵심은 간단하다. 우리는 선택지들의 긍정적인 면을 종합적으로 비교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속성을 하나씩 찾아 해당 선택지를 제거해나간다는 것이다. 마치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메뉴판에서 특정 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먼저 제외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서울대학교 인지심리학과 이현주 교수는 "인간의 뇌는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며 "이는 생존에 위협이 되는 요소를 빠르게 감지하고 회피하기 위한 적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단점을 먼저 찾아 제거하는 방식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일상 속 비모충 모형의 작동 원리


비모충 모형은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선택 과정에서 작동한다. 대학생 박수진(21)씨가 취업을 위해 회사를 선택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처음에는 20여 개의 회사 목록이 있었다. 하지만 "야근이 너무 많은 회사는 제외", "급여가 너무 낮은 회사는 제외", "출퇴근 시간이 2시간 이상 걸리는 회사는 제외"하며 하나씩 지워나갔다. 최종적으로 3개 회사가 남았을 때서야 긍정적인 측면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모든 회사의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너무 복잡했어요. 일단 절대 안 되는 조건들을 걸러내니까 선택이 훨씬 쉬워졌죠."라고 박씨(28)는 말한다.



온라인 쇼핑에서 만나는 필터링의 심리


비모충 모형은 특히 온라인 쇼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쇼핑몰의 '필터' 기능이 바로 이 심리를 활용한 대표적인 예다. 소비자들은 "10만원 이상은 제외", "배송 기간 3일 이상은 제외", "리뷰 평점 4점 미만은 제외"하며 상품을 걸러낸다.


이커머스 업계에서 10년간 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철수(35)씨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원하지 않는 것을 제거하기'를 선호한다는 것을 데이터를 통해 확인했다"며 "필터 기능을 사용하는 고객의 구매 전환율이 일반 검색보다 30% 이상 높다"고 밝혔다.



연애에서도 작동하는 제거의 법칙


흥미롭게도 비모충 모형은 연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개팅이나 온라인 데이팅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매력적인 점을 찾기보다는 "절대 안 되는" 조건들을 먼저 확인한다.


"키 170cm 미만은 안 돼", "흡연자는 안 돼", "나이 차이 5살 이상은 안 돼"와 같은 방식으로 잠재적 파트너를 걸러낸다. 연세대학교 사회심리학과 정민호 교수는 "연애 초기에는 호감보다는 거부감이 관계 지속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단 하나의 치명적인 단점이 모든 장점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의 채용 과정에 숨어있는 비모충 모형


기업의 채용 과정 역시 비모충 모형의 전형적인 사례다. 인사담당자들은 수백 명의 지원자 중에서 적합한 인재를 선발할 때, 먼저 "학력 조건 미달", "경력 부족", "자격증 없음" 등의 기준으로 지원자를 제거해나간다.


대기업 인사팀장으로 15년간 근무한 이팀장(42)씨는 "서류 심사에서는 긍정적인 면을 찾기보다는 부정적인 요소를 찾아 탈락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며 "최종 면접 단계에서야 지원자의 장점과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비모충 모형의 장점과 한계


비모충 모형은 복잡한 의사결정을 단순화하는 유용한 전략이다. 선택지가 많고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인지적 부담을 줄이고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선택지를 미리 걸러냄으로써 큰 실패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좋은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다. 한두 가지 단점 때문에 제거된 선택지가 실제로는 전체적으로 가장 좋은 대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김재현 교수는 "비모충 모형은 '만족할 만한(satisficing)' 선택에는 유용하지만, '최적의(optimizing)' 선택을 찾는 데는 부적합하다"며 "특히 창의성이나 혁신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이런 제거 방식이 새로운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제거 전략


AI와 빅데이터 시대에 접어들면서 비모충 모형도 진화하고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싫어요'를 누른 콘텐츠의 특성을 분석해 비슷한 콘텐츠를 걸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개발팀에서 근무했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박현우(38)씨는 "사용자의 긍정적 반응보다 부정적 반응이 더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어서 필터링에 활용하기 쉽다"며 "앞으로 AI는 인간의 이런 인지 패턴을 더욱 정교하게 모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명한 선택을 위한 제언


전문가들은 비모충 모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제거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막연한 "별로야"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 


둘째, 제거된 선택지를 완전히 버리지 말고 '보류' 목록에 두어야 한다. 나중에 기준이 바뀌거나 새로운 정보가 생겼을 때 재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중요한 결정일수록 제거 방식과 종합 평가 방식을 병행해야 한다. 비모충 모형으로 선택지를 3-5개로 줄인 후, 남은 대안들에 대해서는 장점과 단점을 종합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거의 지혜와 포용의 균형


비모충 모형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돕는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만능은 아니다. 때로는 단점이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뛰어난 선택지를 놓칠 수 있고, 완벽함에 대한 과도한 추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제거의 논리를 사용하고, 언제 포용의 논리를 사용할지 아는 것이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선택에서는 비모충 모형이 효과적이지만,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는 더 신중하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는 선택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비모충 모형은 우리가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침반만으로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재현. (2024). 현대 소비자의 의사결정 과정과 인지 편향.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연구논문, 18(3), 89-107.

이현주. (2024). 인지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선택과 제거의 메커니즘. 서울대학교 인지심리학과 학술지, 12(2), 34-52.

정민호. (2024). 대인관계에서의 선택적 주의와 거부 반응. 연세대학교 사회심리학과 연구보고서, 7(1), 78-95.

한국소비자원. (2023). 온라인 쇼핑 소비자 행동 패턴 분석 보고서. 한국소비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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