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한국심리학신문=정세현 ]
이미지 출처: Pixabay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다양한 냄새와 향기를 마주한다. 향기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그 냄새를 맡았던 기억까지 선명하게 불러온다. 예를 들어 여름의 시원한 수박 냄새는 가족들과 물놀이를 즐기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고구마 굽는 냄새는 겨울밤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어먹던 따뜻한 기억을 소환한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 특정한 향기와 연결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이를 문학 작품에 풀어낸 작가가 있다.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이다. 그는 프랑스의 작가로 1913년부터 1927년까지 출판된 소설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 현상을 묘사했다. 그는 마들렌에 홍차를 적셔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어린 시절에 고향에서 먹었던 마들렌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때 되살아난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의 집필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 후부터 향기를 통해 기억이 되살아나는 현상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르게 되었다.
출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1912, 민음사)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향기의 힘
이미지 출처: wikimediacommoms (프루스트 효과)
프루스트 효과에서 향기는 단지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을 불러오는 역할만 한다. 하지만 후각이 기억을 불러올 수 있는 강력한 감각인 만큼 최근에는 향기와 뇌 기능 간의 연관성을 알아보는 연구들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의 학습 및 기억 신경생물학 센터(Center for the Neurobiology of Learning & Memory, CNLM) 에서는 향기와 기억력을 연관시킨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를 “Frontiers in Neuroscience”에 기재하였다.
이 연구는 기억력에 관한 질병을 앓은 경험이 없는 60~85세의 남녀 43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모든 참가자들에게는 서로 다른 천연 오일과 디퓨저가 담긴 총 7개의 카트리지를 제공하였는데 그 중 한 그룹에는 향의 강도가 가장 센 카트리지를 제공하였고, 다른 한 그룹에는 소량의 오일이 들어있는 카트리지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두 그룹 모두 매일 잠들기 전 디퓨저에 오일을 넣은 후 잠을 자도록 하였다. 오일을 넣은 디퓨저는 참가자들이 수면에 든 시간 중 2시간 동안 발향하였고, 총 6개월간의 실험을 끝낸 후 참가자들은 기억력 평가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학습 검사(Rey Auditory Verbal Learning Test)를 하였다. 그 결과, 향의 강도가 센 오일을 사용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인지 능력이 226%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단어학습 검사 뿐만이 아니라 fMRA영상 검사 결과도 동일했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리고 표현하는 과정을 담당하는 갈고리 섬유 다발(Uncinate fasciculus)의 경로가 향의 강도가 센 오일을 사용한 그룹에서 더 개선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냄새가 말해주는 뇌의 신호
사실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은 후각의 상실을 통해 대략 70여개의 신경 및 정신 질환의 발병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향기는 우리의 기억력을 높이는 역할과 함께 특정 향을 맡을 수 있는지에 유무에 따라 병의 진단 또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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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땅콩버터와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관한 연구이다. 미국의 플로리다대학교 의대 연구팀은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들이 병의 초기부터 땅콩버터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는 2013년 국제 학술지인 ‘신경과학저널’에 실렸으며 이후 이른바 “땅콩버터 테스트”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후각상피와 후각망울의 특정한 부위부터 퇴행이 시작된다. 이러한 특정 부위의 신경 퇴행 현상은 특정한 냄새를 감지하는데 손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땅콩버터 냄새를 이용해 치매를 진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향기를 선택할 때
프루스트 효과가 말하는 것처럼 향기는 옛 기억을 불러오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흐릿해진 추억들이 특정한 냄새를 통해 예상치 못한 순간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반갑기도, 때론 씁쓸하기도 했던 추억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평범했던 일상이 특정 향기로 인해 순간 일렁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향기는 더 이상 우리의 감성을 두드리는 역할만 하지 않는다. 최근 심리학과 뇌과학 분야에서 진행한 많은 연구를 통해 냄새를 맡는다는 것이 뇌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며 기억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특정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통해서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는 발견은 후각이 우리의 심리뿐만이 아니라 뇌를 진단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같다. 일상의 냄새들이 추억을 불러올 때 우리는 감성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향기를 맡는데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1) 김현정, "‘향기’가 불러온 추억? 향기는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돼 ", The Science Times, 2023.08.17, https://www.sciencetimes.co.kr/nscvrg/view/menu/251?searchCategory=223&nscvrgSn=252757
2) 문제일, "몸과 마음을 여는 1조개의 열쇠", 동아사이언스, 2022.03.05,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52651
3) 조현욱, "매일 향기 맡으며 잠들었더니…기억력 2배 향상", 더메디컬, 2023.09.13, https://www.themedical.kr/news/articleView.html?idxno=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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