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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한강훈 ]


“네 스펙에 잠이 오냐?” 방학을 맞아 토익 학원에 등록한 첫날 들은 말이었다. 동네에서 꽤 유명했던 그 강사는 오리엔테이션부터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해야 기업에 서류라도 넣어본다며 일장 연설을 펼쳤다. 동시에 취준생들의 민증처럼 치부되는 토익 점수조차 없는 이곳 수강생들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방침으로 인해 수강생들은 한국에서 미국을 체험할 정도로 두 달간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영단어만 달달 외우게 되었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 사이에서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오가곤 하나 그것도 이젠 옛말에 불과하다. 과열된 경쟁 탓에 최근엔 ‘삼당사락’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등재됐을 정도이니 말이다.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에서도 “발명왕 에디슨은 하루에 세 시간만 잤다” “나폴레옹은 하루에 세 시간만 자며 유럽 절반을 제패했다”라며 유명인들의 사례를 내세워 성취와 수면은 반비례한다고 제창했다. 우리도 이 같은 성과를 내려면 잠을 줄여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뇌 속 해마는 우리의 기억을 정리한 뒤 저장한다.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 장기기억으로 남기는 것이다. 특히 이 작업은 긍정적 정보를 다룰 때 더 활발히 이루어진다. 충분한 수면을 취한 다음 날 긍정적 정보에 대한 기억이 더욱 선명하고 해당 정보를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예를 들어, 전날 학원에서 받은 점수가 평소에 비해 조금 높았다고 가정해보자. 숙면을 취한 후 이 기억은 더 긍정적으로 재구성되어 오늘 하루 더 열심히 공부할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자들은 기억의 긍정성 편향이라고 부른다.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한다면 기억의 긍정성 편향이 촉진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부정적 기억이 우세해지게 함으로써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울증은 수면의 질을 해칠뿐더러 취침 후 수면까지 걸리는 시간을 늘려 수면의 양도 줄인다. 또다시 수면이 부족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과 더불어 집중력, 작업 기억, 면역력 등 학습 성취도와 건강에 관련한 여러 능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적정 수면 시간에 못 미치게 자면서 능력 저하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그럴 수 있었을까. 수면 시간에는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의 잉후이 푸 신경학과 교수팀은 한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했다고 학술지에 게재했다. 보통 사람들보다 짧은 수면을 취해도 능력 저하를 보이지 않는 유전자를 다수 찾아냈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수면 시간은 더 이상 의지의 문제가 아닌 유전적 문제라는 사실이 점점 입증되어 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잠을 학업 및 개인 성취 등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무언가로 간주한다. 적게 자고 열심히 생활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개개인마다 취침과 기상, 수면 시간 모두 다르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면은 기억을 긍정적으로 이끌며 신체와 정신을 회복시키는 삶의 중요 요소이다. 각자 필요한 만큼 자신의 수면을 보장할 수 있어야만 내일을 위해 더 나아갈 힘을 비축할 수 있을 것이다.



신지은, 김정기, 임낭연. (2017). 「청년기의 수면과 행복」.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23(2), 271-293.  

김정기, 송혜수, 연미영. (2009). 「한국 대학생의 수면양상, 일주기성 유형 및 우울수준 간의 관계에 대한 예비연구」. 한국심리학회지: 건강, 14(3), 617-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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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18 09:06:45
  • 수정 2021-10-18 11: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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