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서울 외곽의 작은 마을, 1950년 6월 24일.
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곧 멎을 듯하다가도 다시금 굵어지기를 반복하는 끈질긴 여름비였다.
마루 끝에 쭈그리고 앉은 청년이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그의 이름은 한도윤.
만 스무 살, 고등학교 졸업 후 징집 통지를 받았다.
내일이면 군인이 된다.
그는 성냥을 켰다.
파르르 떨리는 불꽃이 잠시 어두운 처마 밑을 밝혔다.
빗소리 사이로 짧은 불빛이 흔들렸다.
한 모금 빨아들이며 도윤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도윤아, 그거 끊는다더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나무문 사이로 얼굴을 내민 어머니는 수건으로 손을 닦고 있었다.
비에 젖은 채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모양이다.
“오늘 하루만 피울게요.”
도윤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웃음은 억지로 입꼬리를 당긴 모양새였다.
입가의 담배 연기조차 어딘가 쓸쓸했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한숨이 무거웠다.
삶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체념,
그리고 내일이면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야 하는 이들의 숙명 같은 것.
“정말 전쟁이 날까?”
도윤은 혼잣말처럼 중얼였다.
가끔 동네 어르신들이 ‘북한이 이상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라디오에서도 요즘 부쩍 북쪽 뉴스가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전쟁’이란 게 벌어질까?
누가, 왜?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총을 겨눈다고?
그는 문득 이틀 전, 정희를 떠올렸다.
기차역에서 작별 인사를 하던 순간.
정희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손만 꼭 쥐었다.
“나 꼭 돌아올게.”
그때 도윤이 말하자, 정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약속은 하지 마. 그런 약속은…”
정희의 떨리는 눈동자가 잊히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돌아오지 못하는 전쟁을 예감했던 것이다.
그때 들려온 무거운 발걸음 소리.
마루에 올라선 아버지가 우산을 털며 들어왔다.
비에 젖은 군복 차림.
“도윤아.”
“예, 아버지.”
“잠 못 자더라도 새벽엔 나가야 한다. 군용 트럭이 다섯 시에 내려온단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들어가는 건, 단지 '복무'가 아닌 '전장'일 수 있다는 것을.
밤이 깊어갔다.
도윤은 누운 채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 위에는 빗물이 스며든 얼룩이 퍼지고 있었다.
어딘가, 총성보다 더 무서운 정적이었다.
‘사람을 죽이게 될까.’
도윤은 눈을 감았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빗소리 너머로
누군가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였다.
작가의 말 :
전쟁은 역사의 사건이기 이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지워버리는 과정입니다.
《이름 없는 전쟁》은 그 지워진 이름들의 심리와 고통,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첫 회부터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에서는 도윤이 군용 트럭에 올라타며 본격적으로 전쟁의 첫 장으로 들어섭니다.
계속해서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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