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우
[한국심리학신문=송연우 ]
생텍쥐페리, 니체, 쇼펜하우어. 익숙한 이름들이다. 이 셋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는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하긴,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대화법 38가지』,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저술했다. 제목만 읽어도 알 수 있듯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결의 책들이다. 그럼에도 이 세 사람에게서는 ‘인간 알레르기’란 공통점을 뽑아낼 수 있다. 인간 알레르기. 무엇이 그들이 인간을 그토록 싫어하고 꺼리게 했을까?
인간 알레르기란?
오카다 다카시가 저술한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의 책 소개를 가져왔다. 그가 묘사한 생텍쥐페리,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모습 일부를 발췌했다. 오카다 다카시가 느낀 그들의 ‘인간 알레르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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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원한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사실 그는 어릴 때부터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즉 ADHD의 특징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아이였다. 일 처리도 서툴렀고, 차분하지도 않았으며 성적도 좋지 않았던 그는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았고, 더욱 반항적인 아이로 자라났다. 비행기 조종에도 서툴렀던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해서 추락하는 사건까지 겪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종사 일을 찾아 전 세계를 방랑했고, 결국 2차 세계대전 중 지중해 상공에서 교신이 끊긴 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어쩌면 인간 알레르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푸른 하늘을 동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129~131쪽 참조)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질투심과 불행감에 ‘르상티망’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철학자, 니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장애를 앓았다. 세 살이 되어도 말 한마디를 못 했지만 네 살 때는 독서를 시작하며 천재 기질을 드러낸 그는 정신적으로는 불안하고 과민했지만 성적은 아주 우수한 비운의 철학자였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아주 젊은 나이에 바젤 대학의 교수가 된 그는 고독하다는 점과 인간관계에 서투르다는 점에서 쇼펜하우어와 매우 유사한 길을 걸었다. 그는 10년 후 대학을 그만두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아예 끊은 채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99~100쪽, 124~127쪽 참조)
“염세철학의 대명사, 쇼펜하우어. 그는 평생 어머니를 증오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어머니는 사교와 예술에는 관심이 있어도 양육에는 무관심하여 아들을 자주 방치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늘 우울하고 신경질적이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는 자신보다 자신의 즐거움을 우선시하는 어머니를 증오했다. 어머니가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애인과의 관계 때문에 우울해하자 그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자살한 건 모두 당신 때문이야!”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의절했고 평생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164쪽 참조)
이 세 명은 인간들로부터 외로움뿐만 아니라 고독감, 배신감, 불안함 등 다양한 범주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감정을 꼽자면, 셋이 공통으로 느낀 것은 ‘외로움’이다. 개인의 성격적, 생리적 특성으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도, 타인도 알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고독의 괴로움을 타인을 향한 부정적인 반응 혹은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드러냈다.
인간 알레르기의 원인, “사회적 고립”
2003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실험 결과를 잠깐 소개하겠다. 태어난 지 3개월이 된 어린 생쥐를 우리에 홀로 가두는 것이 실험의 첫 시작이었다. 한 달이 지난 뒤 이 우리에 새로운 생쥐 한 마리를 더 집어넣었다. 이 둘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고립된 생활을 지속해 온 어린 생쥐는 새롭게 입주한 생쥐를 적으로 인식했다. 즉 ‘침입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고립 기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생쥐를 적대하는 성향은 더욱 크게 두드러졌다. 생쥐를 장기간 사회적으로 더 격리한다면, 뇌 백색질의 수초들이 벗겨져 뇌 영역의 부피가 줄어든다. 신경 회로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백색질의 수초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도 생쥐와 다를 바 없다. ‘더불어 살 줄 알고, 알아야만 하는’ 호모 사피엔스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는 “외로움과 공감 능력 감소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뇌 연구가 있다. 외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관점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주변을 경계하고 위협 요소를 찾는다”라고 언급했다.
‘사회적 고립’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을 포함한 사회적 동물이 그 사회의 관계에 참여하지 않고 고립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인간의 정서 발달 및 자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국의 심리학자 Edward John Mostyn Bowlby는 모든 동물이 자기 무리에서 소외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동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 본능적이고 필수적인 일이라 주장했다. 동물은 무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뇌의 특정 부위를 통해 고통을 느낀다.
사회적 고립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비자발적 요인에 의해 개인, 지역 사회와의 상호작용의 감소를 의미한다. 결국 사회적 관계망은 줄어들고, 외부와 단절되어 고립된 상태에 놓인 인간은 고독감과 외로움 등의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사회 일원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사회적 고립”에도 종류가 있다?
사회적 고립은 크게 두 가지 기준 – 자발성과 요인의 위치 - 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자발적 고립은 개인의 의지로 고립을 선택한 경우다. 산속에 들어가 은둔하여 살거나,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등으로 불리는 인간이 그 예다. 혹은 우울에서 비롯된 무기력과 무가치감과 같은 심리적 이유로 타인과 접촉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 반면 비자발적 고립은 질병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사회적 배제를 당한 경우를 말한다.
사회적 고립의 외부 요인에는 비혼율과 이혼율의 증가, 가족 형태의 분열화, 소셜 미디어 사용 증가, 부모의 원인 등이 있다. 내부 요인, 즉 심리적 요인에는 낮은 자아존중감, 공격적 성향, 분노, 외로움, 불안, 우울 등 정서적 부적응과 이에서 비롯된 우울증과 대인공포증 등이 있다.
외로움의 나비효과, 혐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은 대면과 비대면을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대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외로움은 존재한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간의 물리적 거리를 아주 가깝게 만들었으나, 역설적으로 그들이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과 외로움의 지수는 오히려 높아졌다.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삶의 방식에 무게를 더한 신자유주의적 생활 양식과 경쟁 논리가 ‘배제와 소외의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외로움은 친밀감의 부재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을 상실하게 하는 실존적인 원인을 기반에 둔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배제된 느낌’을 받게 하는 구조적 감정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고립되게 만든 사회 구조와 통치 행위에 분노하고, 정치를 혐오하거나 주류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극우 포퓰리즘에 동조하기 쉬워진다.
노동은 유연해지고, 노동자의 처우는 빈약하며, 빈부 격차는 극대화되고, 신자유주의는 공공복지에 호의적이지 않다. 고소득자가 아닌 계층 – 대다수 인간이 속할 것이다 – 은 구조적 배제와 소외 앞에서 복지와 권리의 상실을 느낀다. 가족은 해체되고, 신은 죽었으며, 고용 불안정성은 높아지기만 하는데 복지마저 사라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외롭다. ‘물질주의’만이 이 고립을 해결하리라 믿고 좇지만, 사실은 외로움의 원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종종 – 자주 – 남에게 탓을 돌린다. (위에서 설명했듯)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울수록 삶이 절박해지므로, 정확한 원인을 찾아 사유할 능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나치를 이끈 히틀러의 쇼맨십과 아이히만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만이 유대인을 학살하지 않았다.
* 참고 문헌
1) 강은희. (2021). 현대사회 동향이 청소년의 고립, 외로움, 우울 및 뇌에 미치는 영향 [석사학위논문, 대구사이버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5915046
2) 박다해. (2022). “외로움은 사회적 위험”...극단주의는 그 틈을 파고든다. 한겨례.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64283.html
3) 오카다 다카시. (2023)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2023개정판). 동양북스. https://www.dongyangbooks.com/book/book_view.asp?menu_1=general&menu_2=general%5Fdevelopment&goods_code=2832
4) 이은이. (2020). 사회적 거리 두기와 코로나 블루. 코로나 19 과학리포트, 1(-).11. 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971/selectBoardArticle.do?nttId=18335
5) 이정은. (2024). 외로움과 정치 혐오 - 한나 아렌트의 고독과 외로움의 의미 변화에 기초하여. 시대와 철학, 35(1), 91-126. https://doi.org/10.32432/KOPHIL.35.1.3
6) Garrett, N., Lazzaro, S., Ariely, D. et al. The brain adapts to dishonesty. Nat Neurosci 19, 1727–1732 (2016). https://doi.org/10.1038/nn.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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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철학자의 공통점인 ‘인간 알레르기’가 단순한 성격 차이나 기질 문제가 아니라,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고립된 사람은 점점 타인을 경계하게 되고, 결국 관계를 피하거나 사회를 혐오하게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특히 외로움이 개인의 심리뿐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분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족 해체, 경쟁 중심 사회, 복지 축소 등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사회적 요인들을 보며, 인간의 외로움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