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밤이 깊었다.
윤설화는 방 안에서 조용히 종이인형을 꺼냈다.
하나, 둘, 셋… 여섯.
모두 얼굴이 다르고,
등 뒤엔 각각 이름이 적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깊게 칼자국이 그어진 인형 하나.
그건—
‘김응철’이었다.
“다들… 내가 무서워져야만, 말을 듣지.”
설화는 낮은 속삭임으로 혼잣말을 한다.
그 말투는 부드럽지만, 무언가 찢겨진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 시각, 은애의 시선
방 바깥.
문틈 사이로 설화를 바라보던 은애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또 시작이야…’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설화가 조용할수록, 마음속 깊은 어둠이 고개를 든다는 걸.
“언니…”
속삭이듯 이름을 불러보지만, 들릴 리 없다.
은애는 조용히 등을 돌렸다.
다음 날, 낮 — 장하율
“꿈은 그대로였습니다.
제가 무릎 꿇은 그 모습까지도…”
하율은 설화와 마주 앉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소.”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요? 이상하네요.
꿈이 멈춘 건, 제가 인형을 덜 태워서일지도 몰라요.”
“...그 인형, 대체 뭐요.”
하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화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이름 없는 인형들.
표정도 없이 그려진 얼굴들.
그리고…
한쪽에 말라붙은 붉은 흔적이 있는 인형 하나.
“이건, 예전에 만든 거예요.
정말 나쁜 사람들한테만 써요.”
“정말… 당신이 한 건가요?
그 사람들이… 꿈을 꾸고, 미쳐간 게…”
“…믿으세요?”
설화는 고개를 들었다.
하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상자 안을 들여다봤다.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설화의 눈은,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날 밤 — 은애와 설화
“언니…”
설화는 등을 돌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인형들… 너무 많아요.
이젠 그만해요.”
“…네가 뭘 알아.”
“나도 알아요.
그 마음.
아무도 안 지켜준다는 그 기분… 나도 알았으니까.”
은애는 조용히 설화의 등을 감쌌다.
“하지만 언니…
그 사람들이 언니를 두려워해서 곁에 있는 게 아니라,
불쌍해서도 아니에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언니가… 아팠으면 좋겠는 사람이에요.”
침묵 속의 눈물
설화는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 어떤 악몽도 아니고,
그 어떤 ‘조종’도 아닌.
“…은애야.
나는… 그냥,
그냥 누군가가 내 말을 믿어줬으면 했어.”
작가의 말:
사람의 마음은 누구도 쉽게 조종할 수 없습니다.
윤설화가 쥐고 있던 인형은
사실 세상을 통제하려는 마음의 상징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녀는 아직,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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