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밤이었다.
등불은 꺼졌고,
달빛만이 방 안을 아득히 적시고 있었다.
하율은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설화의 방,
그 안에서 뭔가…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무의식은… 나를 믿는다…”
“그 애가 나를 지켜준다… 그 애가…”
낮고 떨리는 혼잣말.
하율은 자신도 모르게 문틈에 눈을 갖다 댔다.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깨를 움츠린 채,
양손으로 종이 인형을 꼭 쥐고 있었다.
그 입술은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이건… 너야.
너니까, 움직일 수 있어.
내가 말하면, 네가 대신 움직여줘야 해…”
그리고—
그녀는 인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장하율… 넌…
꿈속에서도 날 잊지 말아줘…”
하율의 심장 박동
쿵,
쿵—
하율은 이상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동자.
그 불안한 눈빛 속에서 그는
자신이 모르는 설화의 진짜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이건 능력이 아니라…
고립이다.’
다음 날 아침 — 관아 앞
“장 서리 나리! 그대 어제 밤, 김응철 댁에 들렀다는 말이 사실이오?”
하율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설화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였다.
종이 인형을 바라보며 “움직여달라”던 그 표정.
그건 누군가를 조종하는 이의 표정이 아니었다.
자신을 살려달라고 말하는 얼굴이었다.
설화 — 은애의 방문
“언니… 잠깐 나랑 얘기 좀 해요.”
설화는 벽을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손엔 여전히 말라붙은 인형 하나.
그 인형엔 낙서처럼 비뚤어진 글자가 적혀 있었다.
— ‘나’
은애는 그 인형을 보고 잠시 멈췄다.
“…설화 언니.
혹시… 그 꿈,
언니 꿈 아니었어요?
남이 아니라, 언니가 꾸던 거 아니냐고요.”
설화의 속삭임
“…무서워.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현실이면, 내가 너무 작아질까 봐…”
설화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림자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율…
그 애는…
내가 만든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작가의 말 :
현실과 환상이 엉켜버린 경계에서,
설화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장하율이 그 경계 너머를 처음으로 목격합니다.
그녀는 조종자가 아니라,
잊히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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