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림
[한국심리학신문=고예림 ]
어느날 누군가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아보라고 한다. 그 대신 진정한 휴식 시간을 가져보라고 말한다. 당신은 분명 그 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시할 것이다. 당장에 할 일이 쌓여있고 데드라인 날짜는 다가오는데 이 말이 들릴 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명심해야 한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무책임하고 터무니 없는 말이다. 1분 1초가 우리에게는 소중한 자산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업무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에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목표 지향적인 사회 속 우리는 ‘다양한 것 시도해보기’, ‘열심히 해내기’ 등 당연시된 사회 모토를 따라가고 있다.
올해의 트렌드 '치유를 위한 게으름'
한편 영국의 글로벌 트3렌드 예측 회사 WGSN는 2025 주요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Therapeutic Laziness(치유를 위한 게으름)을 꼽았다. ‘치유를 위한 게으름’은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휴식을 취하는 행위를 뜻한다. 무조건적인 게으름이 아니라, 번아웃과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형태의 자기관리라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 WGSN는 게으름을 통해 힐링을 한다는 트렌드가 ‘안티 웰니스’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운동과 생산성만을 강조하고, 아침 5시에 일어나는 삶만이 훌륭하다는 식의 ‘웰니스 강박’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To do list를 적고 있는 뚱이, 현대인에게도 필요하다/사진=스폰지밥
여러분은 어떤가? 오후 1시에 눈을 뜨면 죄책감과 절망감이 든 경험이 있지 않은가? 전날 해야할 일을 열심히 마치느라 늦은 시간 잠을 청했을 뿐인데, 다음날 하루 시작부터 뭔가 꼬였다는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음에도, 강박적으로 내 삶을 재단하며 단편적으로 판단한다. 즉, ‘치유를 위한 게으름’은 단순히 무기력과 나태함이 아니라, 빈틈이 없어야 하는 사회 속 강박에서 현대인들에게 숨통을 틔여주기 위한 하나의 처방전으로 떠오르고 있다.
게으름은 회복의 기술이다. 흔히들 게으름 하면 부정적인 개념으로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게으름은 우리에게 필수적이다.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성실히 개척해왔던 사회에서 자연스레 등한시됐던 게으름을, 이제는 우리가 노력해서 터득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게으름은 우리가 제대로 휴식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존재이다. 휴식을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조절하고, 수면의 질을 개선하기도 하며, 신체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계도 쉬지 않고 가동하다보면 멈추거나 고장이 난다. 우리도 똑같다. 인간은 휴식이 필수적인 존재이다.
나는 제대로 쉬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쉼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현대인은 소비를 쉼으로 혼동하는 등 근본적인 쉼에 다가가기 어려워 한다. 휴식의 개념이 자리 잡혀 있지 않으니, on/off 상태를 구분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대표적으로 PESM 증후군은 생각과 고민이 너무 많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람들이 쉽게 겪는다. 자주 그리고 사소한 것에 불안을 느끼고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증상은 쉼이 필요할 때에도, 쉬어야 하는 와중에도 침투하여 휴식하지 못하고 매순간 본인에게 채찍질을 하며 쉬지 못해 또 다른 악순환이 반복된다. 일상에 지장이 갈 정도로 심해지면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사회 불안장애 그리고 ADHD 등의 정신 질환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도 하다. 이처럼 회복하기 위해 가지는 휴식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쉬어야 할 시간에 정작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재충전 시간을 갖는 베드 로팅/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휴식을 실천하는 새로운 개념들이 부상했다. 게으름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침대에 누워 쉬는 ‘베드 로팅’, 불안과 죄책감 없이 쉬는 ‘무죄한 휴식’, 잘 자는 것이 여행의 목적인 ‘수면 투어리즘’, 잠옷을 입고 편안하고 느긋하게 다니는 ‘데이자마스’, 하루쯤은 간편하게 나를 돌보는 ‘힘을 뺀 스킨케어’ 등 다양하다.
그 중 베드로팅은 큰 수요를 보였는데, 메가박스는 리클라이너 좌석에 누워 힐링 음악과 함께 두 시간 동안 쉴 수 있는 ‘메가쉼표’ 이벤트를 연 것이다. 다양한 연령대와 신분의 관객들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아닌 좌석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휴식’도 돈 주고 사는 사회가 온 것이다. 실제로 메가박스 강남점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영화관에서 쉬려는 사람들로 부며 연일 전석 매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현대인들에게 휴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게으름을 학습하다
우리는 지금 휴식이 필요하다. 삶 속에서의 휴식은 모두에게나 필요하며 우리는 이것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만큼 무의식 중에서 진정한 휴식을 바라고 있다. 뒤쳐지고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내 몸을 보살피지 못한 현대인들은 게으름을 학습해보자.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 어렵다면,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를 나도 한번 따라가보겠다는 접근으로 다가가보는 것은 어떤가? 아무것도 안 해보자. 진정한 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는 게으름이 필요하다.
게으름은 그저 누워 있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위한 가장 능동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오늘 하루는 꼭 해야 할 일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자. 일정을 비워두고, 휴대폰 알림을 꺼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정해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엔 불안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나의 리듬을 찾게 될 것이다. 진짜 나를 돌보는 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잘 쉬는 법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예경, 생각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면… '정신적 과잉 활동', 헬스조선, 2024.07.01.,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7/01/2024070101990.html
2) 유지희, "점심도 포기했어요"…대낮에 강남 직장인들 '우르르' 진풍경 [트렌드+], 한국경제, 2025.03.19.,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31944867
3) 이준형, [주간 데이터동향] 갓생 지고 '게으름' 뜬다...쾌적한 수면 돕는 영화관 인기, 반론보도닷컴, 2025.03.21., https://www.banronbodo.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50
4)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가 좋은 이유, BBC NEWS 코리아, 2024.08.11,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e80x326pk7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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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며 나는 ‘쉼’에 대해 얼마나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여기고, 게으름은 나약함이라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치유를 위한 게으름’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나태함이 아니라, 삶을 지속하기 위한 회복의 기술이라는 점에서 큰 울림을 주었다. 특히 베드로팅이나 무죄한 휴식 같은 새로운 휴식 방식은 나에게도 꼭 필요한 방식이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