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어릴 적, 설화는 꿈속에서
계속 같은 장면을 반복했다.
한밤중의 기와 위.
천천히 기어가는 그림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 없는 발소리.
그 꿈은 언제나…
"그날"로 이어졌다.
“거기 있느냐.”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던 목소리.
설화는 이불 속으로 숨었지만,
그 목소리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무서워하지 마.
너도 언젠간, 나처럼 될 테니…”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의 내면에 처음으로
또 하나의 '눈'을 떠올렸다.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꿈을 조종하는 척,
자신을 믿어야 했던 시절.
현재 — 설화의 방
설화는 눈을 떴다.
가슴이 답답했다.
악몽은 여전히 그날의 잔상을 물고 있었다.
“…이젠, 그만해야지.”
그녀는 상자 속 종이 인형을 꺼냈다.
이름이 없는 인형.
그건,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그 시각 — 하율
하율은 은애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무당 수련, 종이 인형,
그리고 매일 밤 되풀이되는 환상.
“장 서리 나리.
사람이 상처를 감출 때,
가장 먼저 만든 게 뭔지 아시오?”
은애가 말했었다.
“자기만의 세계요.”
그날 밤, 하율은 설화를 다시 찾았다.
문을 열자, 설화는 조용히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방 안엔 종이 인형 대신,
물 한 그릇과 꺼진 등불 하나.
“…무슨 일이오.”
설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손에 쥔 인형을 천천히 그의 쪽으로 내밀었다.
“…이건, 마지막이에요.”
하율은 그 인형을 받았다.
종이에선 붓자국 하나,
그리고 그녀가 정성껏 쓴 글자 하나가 보였다.
— ‘하율’
“…왜 내 이름을…”
설화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내가 만든 세상 속에서도
나를 진심으로 봐준 사람은…
나리뿐이었어요.”
침묵의 고백
하율은 천천히 손을 뻗어,
설화의 어깨 위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이제, 꿈에서 나옵시다.
당신이 만든 악몽이 아니라,
당신이 처음으로 꾸고 싶었던…
진짜 꿈을 같이 꿉시다.”
설화의 눈가에서,
말없이 눈물이 흘렀다.
작가의 말 :
악몽이란,
사실 누군가에게 잊히고 싶지 않았던 기억의 편린일지도 모릅니다.
설화는 이제 처음으로,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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