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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불은 꿈처럼 조용히 번졌다.


처음엔 연기만 피어올랐다.

양반가의 창고 뒤,

노비들이 묶어두던 천 조각에서 시작된 불씨였다.


그리고—


그 천 위엔 종이 인형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인형엔 이름이 적혀 있었다.


— 김 응 철




아침 — 관아 앞


“윤설화다!”


“그년이 저주를 건 거야!”


“꿈에서 봤단 말이야, 김 대감이 쓰러지는 걸…!”


사람들은 서로의 두려움을 뒤엉켜 퍼뜨렸다.

이제 설화는 더 이상 수상한 여인이 아니라, 저주를 거는 자였다.




장하율, 벽 앞에서 멈춰 서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하율은 어젯밤 설화의 방을 다녀온 걸 떠올렸다.

그녀는 인형을 태우지 않았고,

오히려 손에 쥐고 조용히 기도하듯 읊조리고 있었다.


“다시는…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마을 사람들, 칼을 들다


“윤설화를 불러라!”


“그년을 불태워야 이 꿈에서 벗어날 수 있어!”


김응철의 창고에 불이 나고,

그가 기절한 채 발견된 사건은

마을 사람들의 공포를 확신으로 바꿔버렸다.


“그 종이인형,

내 아들도 받았어!

그 후로 계속 고열에 시달려!”




설화의 방, 그날 저녁


설화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작은 화상 자국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난 안 그랬어…

진짜… 이번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녀의 손은 떨렸고,

눈물은 굳은 살 사이로 흘렀다.




은애의 울부짖음


“언니! 도망쳐요!

지금 이방들이 집 앞으로 왔어요!”


설화는 고개를 저었다.


“…도망쳐도…

이젠, 내가 만든 거라서…”


“무슨 말이에요!

언니가 뭘 만들었는데!”


“공포야…”


설화는 조용히 웃었다.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게 만든 건…

결국 나였어.”




그 순간, 하율이 나타나다


“그만하오!”


하율은 사람들 앞에 섰다.

등 뒤엔 칼을 든 군졸들,

앞엔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


“이건 꿈이 아닙니다!

이건, 공포에 조종당한 사람들의 환상일 뿐입니다!”


“그년은 악귀야! 나리조차 물든 겁니다!”


“아니오.”


하율은 설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누구를 다치게 하려 한 적이 없었습니다.”




설화의 무너짐


“…하율… 나리…”


설화는 울음을 삼키듯 중얼거렸다.


“…그 말,

처음이야.

내가 사람이라는 말…”


하율은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작가의 말 :

공포는 가장 먼저 혐오를 만들고,

그다음엔 누군가를 향한 칼을 들게 합니다.


설화는 자신이 ‘공포의 존재’가 된 걸 깨달았고,

하율은 이제 단순히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을 넘어,

온 세상 앞에서 그녀의 편이 되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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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4-18 09: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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