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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고예림 ]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멍을 때린다. 청소하다가, 공부하다가, 혹은 업무 중 문득 생각이 멈출 때. 이런 순간에 가장 흔히 듣는 말은 "멍 때리지 말고 집중해"일 것이다. 이 말은 마치 멍을 때리는 것이 시간 낭비이며, 비생산적인 일로 여겨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말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말은 “집중하지 말고, 멍 좀 때려봐”이다.



한강 멍때리기 대회, 왜 화제였을까?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가수 크러쉬/사진=나혼자산다오는 5월 11일, 제8회 서울시 ‘멍때리기 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을 겨루는 자리다. 처음 들으면 우스울 수도 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뭐 어렵다고 상금까지 주냐?”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몇 년 전 가수 크러쉬가 우승하며 화제를 모았고, 지금은 수백 명이 참가하는 인기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왜 매년 탈락자가 나올까? 눈을 감고 자거나, 핸드폰을 만지거나, 말을 하면 실격이다. 단순해 보이는 ‘멍 때리기’가 의외로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멍을 잘 때리지 못한다.




멍 때릴 수 없는 사회


이 대회는 시각 예술가 '웁쓰양'이 기획했다. 번아웃을 겪은 그가 던진 질문은 단순하지만 깊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정말 쓸모없는 걸까?”, “혼자 멍 때리는 게 불안하다면, 다 같이 모여서 해보면 어떨까?”


대회 10주년을 맞아 웁쓰양의 토크쇼가 진행됐다/사진=웁쓰양


우리는 늘 무언가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일하지 않는 시간,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시간에 죄책감을 느낀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그런 분위기가 강하다. "멍 때릴 시간도 없다"는 말이 농담처럼 퍼졌지만, 그 속엔 우리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최근 ‘불멍’, ‘물멍’, ‘멍때리기 대회’ 같은 트렌드가 생겨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뇌가 쉬어야 할 시간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멍을 ‘힐링’으로 포장해 겨우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뇌는 멍을 원한다


멍 때리기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뇌가 피로하다는 신호를 보내며, 스스로를 쉬게 하려는 생리적 작용이다. 즉, 멍 때리기는 인간이 진화적으로 만들어낸 자기 회복의 시간이다. 


  ♦ 멍을 때려야 집중할 수 있다
심리학자 스티븐 카플란의 ‘주의 회복 이론’에 따르면, 자연 자극이나 멍한 상태는 집중력을 재충전하는 데 효과적이다. 뇌가 잠시 리셋되는 동안, 우리는 다음 업무에 더 나은 집중으로 돌아올 수 있다.


  •  ♦ 멍 때릴 때 창의성이 발휘된다
    2012년 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연구는, 창의적 사고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더 잘 떠오른다고 밝혔다. 2013년 UC Santa Barbara 연구에서도 ‘멍 때리기’와 창의적 문제 해결 간의 관련성이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샤워 도중, 혹은 창밖을 바라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지 않은가?




진짜 멍 vs. 가짜 멍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멍 때리는 중”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이건 진짜 멍이 아니다. 이러한 행위는 다양한 자극에 뇌가 몰입된 상태로, 오히려 뇌는 더욱 피로해진다.


유튜브를 보며 멍 휴식을 취하는 것은 가짜 멍


사실 멍 때리기에는 ‘진짜 멍’과 ‘가짜 멍’이 있다.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TV를 보면서 멍 때린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다양한 자극이 뇌에 계속 입력되는 상태로 오히려 뇌를 더 피로하게 만든다. 진짜 멍은 진짜 멍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릿속이 비워진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의 주의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순간, 뇌는 그제야 진짜 휴식에 들어간다. 이때 비로소 뇌는 회복과 창의적 재정비를 할 수 있다. 


멍 때리기는 결코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니다. 뇌가 요구하는 자연스러운 리셋이며,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집중력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번에 누군가 “멍 때리지 말고 집중해”라고 한다면, 이렇게 대답해보자.




"집중하지 말고, 멍 때려!"


결국, 멍 때리기는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뇌가 필요로 하는 휴식과 리셋이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가며 늘 '해야 할 일'들에 쫓기다 보니, 멍 때리는 시간을 쓸모없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사실 멍 때리는 그 시간이 가장 중요한 회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번에는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집중하지 말고, 멍 때려!"라고 말해보자. 그것이 바로 우리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준비가 될 테니까.




* 참고문헌

1) 박경호, ‘멍때리기 대회’ 10주년, 왜 해야만 하는가 사회에 던진 질문, 경인일보, 2025.03.25., https://www.kyeongin.com/article/

2) 송혜교, 멍 때릴 자유, 한겨레, 2025.02.17.,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182858.html

3) 신소연, AI를 이기는 최고의 수련법 ‘멍 때리기’, 헤럴드경제, 2025.01.02.,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381336?ref=naver

4) 이은지, “멍…” 대망의 2025 멍때리기 대회, 상금 얼마길래, YTN, 2025.04.21., https://www.ytn.co.kr/_ln/0103_202504210947491268

5) 최훈, ‘갓생’ 속 멍 때리기, 중앙일보, 2024.05.29.,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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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5-01 21: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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