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한국심리학신문 = 정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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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일을 위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 동일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내일 친구와 점심을 약속했다면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디서 만날지, 몇 시에 나갈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5년 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라는 질문에는 ‘성공하고 싶다’,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와 같은 막연한 바람이 먼저 떠오른다. 이처럼 우리는 심리적으로 가까운 일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심리적으로 멀리 있는 일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해석 수준 이론(Construal Level Theory, CLT)”이다.
해석 수준 이론이란?
해석 수준 이론은 인간이 어떤 상황, 사람, 사건을 심리적인 거리에 따라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으로 해석한다는 사회심리학 이론이다. 2000년대 초 이스라엘의 심리학자인 Nira Liberman와 미국의 심리학자 Yaacov Trop에 의해 제안되었으며, 우리가 어떤 대상을 얼마나 가까이 느끼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사고방식이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심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대상일수록 추상적 사고인 상위 해석 수준을 하고, 심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구체적 사고인 하위 해석 수준을 한다는 것이다.
심리적 거리의 네 가지 유형
해석 수준 이론은 심리적 거리를 시간적 거리, 공간적 거리, 사회적 거리, 가상적 거리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눈다. 각각의 거리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고 미래 계획을 세우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시간적 거리(Temporal Distance)는 어떤 사건이 현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내일’은 시간적 거리가 가깝고, ‘10년 후’는 시간적 거리가 먼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에 대한 계획은 구체적으로 세우지만 먼 미래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이용하여 먼 미래의 계획에 대해 특정한 날짜나 기간을 정해두면 시간적 거리가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몰입과 실행 가능성이 커져서 더 높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공간적 거리(Spatial Distance)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거리 차이를 의미한다. 가까이 있는 대상은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은 모호하고 상징적으로 인식된다. 실제로 2006년 Fujita, Henderson, Eng, Trope, Liberman의 연구는 뉴욕대학교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후 영화를 보여준 후 한 집단에는 영화 속 인물이 근처에 있다고 알려주었고, 다른 집단에는 영화 속 인물이 멀리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 결과 영화 속 인물이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다고 알고 있는 집단은 영화의 내용을 더 추상적인 언어로 묘사하는 경향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공간적 거리는 사고의 구체성과 추상성을 조절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는 자신과 타인 간의 심리적, 사회적 관계의 정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처럼 친밀한 사이에 대해서 사회적 거리가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낯선 사람이나 어색한 사람은 사회적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회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많은 공감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회적 거리는 대인관계의 이해와 소통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상적 거리(Hypotheticality Distance)는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을 의미한다. 즉, 확실하게 일어날 일은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껴지고, 가능성이 작거나 불확실한 일은 멀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퇴근 후 운동하겠다는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높아 구체적인 행동 이미지로 떠오르지만, 복권에 당첨되겠다는 가정은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낮기 때문에 추상적인 수준에서 인식된다.
심리적 거리 조절로 실행력 높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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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수준 이론은 단순히 인식 방식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조절과 실행 전략에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목표의 실현 가능성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간적 거리를 줄이고 싶다면 ‘언젠가 해야지’라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이번 주 금요일까지’처럼 구체적인 기한을 설정하는 것이 행동으로 옮기기 훨씬 쉽다. 마찬가지로 공간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단순히 ‘어디선가’가 아니라, 특정 장소나 관련 인물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목표와의 연결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사회적 거리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을 낯선 타인이 아닌 가까운 친구처럼 인식하게 되면, 공감 능력이 향상되고 설득이나 협상에서도 쉽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상적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경우에는 실행 가능성이 작아 보이는 목표라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 그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예컨대 창업이라는 막연한 꿈이 있다면,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하거나 시장조사를 시작하는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심리적 거리를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전략은 목표를 더욱 가깝고 현실적인 것으로 바꾸고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도울 수 있다.
해석 수준 이론의 실제 활용 사례
해석 수준 이론은 마케팅, 조직 경영, 교육 및 공공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현재 많은 기업은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할 시점을 고려해 메시지를 조절한다. 즉각적인 구매를 유도할 때는 ‘실용성’이나 ‘기능’과 같이 구체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장기적인 구매를 유도할 때는 브랜드 철학이나 사회적 가치 등 추상적인 개념을 강조한다. 항공사에서 항공권의 판매를 예로 들어보면 ‘이번 주말 가족여행 할인’이라는 문구를 통해 시간적 거리를 좁히고 ‘10년 후에도 기억에 남을 여행’이라는 문구를 통해 시간적 거리감을 넓혀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기업의 조직 경영에서도 해석 수준 이론은 유용하게 사용된다. 목표를 작고 구체적인 단위로 나눠 직원들의 몰입도와 실행력을 높이고 상위 관리자가 목표를 직접 설명하거나 실현 가능성을 강조하면 직원과의 심리적 거리를 줄여 동기 부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데 사용한다.
또한 교육이나 공공정책에서도 해석 수준 이론을 사용한다. 학교에서는 '기말고사 준비를 잘하자'라는 글보다는 ‘이번 주까지 몇 단원 공부’와 같이 목표를 세분화하면 학생의 집중력과 실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공공기관에서는 ‘2050 탄소중립’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의미하는 문구보다는 ‘오늘 하루 대중교통 이용하기’처럼 가까운 과제를 제시해서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응 캠페인에서는 “내 가족을 지키는 일입니다”와 같은 문구를 통해 사회적 거리를 줄이고 시민의 행동을 유도했다. 이처럼 해석 수준 이론은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를 조절함으로써 구체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당신의 목표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해석 수준 이론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객관적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심리적 거리에 따라 대상이나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고 그에 따른 결정도 달라진다. 이 이론을 이해하고 잘 활용한다면, 막연한 목표를 구체적인 실천으로 바꿀 수 있으며, 먼 미래의 목표를 오늘의 계획으로 연결할 수 있다.
목표가 심리적으로 가까울수록 달성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목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참고문헌
1) Rebecca Hamilton, "심리적 거리 조절하기", Harvard Business Review, 2015.03, https://www.hbrkorea.com/article/view/atype/ma/article_no/451
2) 종함염, “해석수준이론의 적용에 관한 동향 분석”,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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