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한국심리학신문=김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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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민함’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면 대개 신경질적인 행동이나 날카로운 반응, 강한 호불호 표출, 그리고 잦은 짜증과 같은 모습을 연상시키기 쉽다. 그러나 성격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란 매우 흥미롭게도 이와는 정반대의 행동 패턴을 보인다. 이들은 오히려 늘 상대에게 맞춰주고,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결코 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더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으며, 항상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를 세심하게 살피며 모두가 편안할 수 있도록 힘쓰는 사람들인 것이다.
실제 성격과 보이는 모습이 이토록 다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무던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제멋대로 판단을 내린 채 사실은 누구보다도 예민한 이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둔감한 사람으로 대하곤 한다. 그리고 이런 일상이 계속되면 본인조차도 자신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져, 그 괴리감으로 인해 남들보다 훨씬 심각한 감정 소모와 번아웃을 겪기도 한다.
‘예민함’이라는 기질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 같은 감정 소모와 심리적 고통이 지속된다면, 긴장도와 불안감이 높아지다가 결국 만성적인 우울이나 불안 장애 상태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HSP’들이 자신의 기질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란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용어로, 전체 인구의 약 16%가 이에 해당하며, 이들 중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의 비율은 대략 7 대 3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면 어감상 다소 부정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에, 어딘가 성격에 문제가 있을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일반적인 성격 유형 중 하나일 뿐이다.
HSP는 극도로 예민한 만큼, 많은 치명적인 단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민감성은 이들이 가진 단점만큼, 뛰어난 감각으로 인한 수많은 장점들을 공존하게 한다. 다시 말해 HSP들이 자신을 둘러싼 온갖 자극에 괴로워하며 ‘초감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한편, 타인에 비해 많은 정보와 미세한 것들에 대해 식별해낼 수 있다는 점은 동시에 굉장한 장점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어떤 이에게는 선물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주로 느껴질 수도 있는 HSP들이 가진 ‘세 가지 특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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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감각(Super Sense)
HSP의 신경계는 태어날 때부터 무척 민감하게 날 서 있다. 예민한 아기들의 경우 호감을 관장하는 감각 처리 기관의 민감도가 높아, 조금만 불편해도 울음을 터뜨리게 되므로 양육의 난이도가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그만큼 정보를 수용하는 감각이 보다 트여 있어서, 또래 아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훨씬 깊은 수준까지 습득하는 경향이 있다. 즉, 정보 처리에 있어 타인보다 더 빠르고 많은 선행 학습이 가능하다. 따라서 HSP들은 어린 시절부터 기본적으로 영민한 머리를 갖추고 있는 편이다.
HSP들의 감각 처리 기관은 주변의 모든 자극을 흡수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심리학자 린다 실버만(Linda Silverman)이 진행한 연구에서는, 선천적인 영민함과 감각 처리 기관의 민감성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아기부터 각종 자극에 대한 인풋을 보다 깊은 수준까지 처리해온 사람이라면, 자연히 뇌 신경회로의 발달도 상대적으로 앞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HSP들은 이러한 ‘초감각’으로 인해 언제나 편안하고 쾌적한 환경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대체로, 보다 안락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몹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예민한 아기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어떤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세밀한 부분에서까지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부모가 항상 세심한 배려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HSP들은 상대적으로 자기 관리를 잘하는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불편하고 불쾌한 상황에서는 타인보다 훨씬 더 힘들어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생활하게 될 경우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고 결과적으로 '번아웃'에 빠져 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오히려 굉장히 둔감하고, 게으른 사람처럼 비추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듯 과부하 되기 쉬운 '민감한 신경계'를 가진 HSP들은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평소에 자신의 한계치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고, 스스로 그 경계에 가까워졌다고 판단될 경우 그 즉시, 각종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2. 초감정(Super Feeling)
HSP들의 민감성은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들은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매우 깊고 강하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남녀 관계에서의 ‘사랑’에 있어서도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열정이 식고 상대방의 단점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그토록 열정적이었던 '사랑' 역시 불타올랐던 만큼 빠르게 식어 버리곤 한다. 이렇게 이들은 항상 '초감정적 상태'를 경험하기에, 좋을 때와 싫을 때가 매우 극명하게 갈리고, 그에 따른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HSP들의 '초감정'은 자신뿐만이 아닌, 타인의 감정에도 쉽게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HSP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굉장히 잘 인지하고 그 감정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상당히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상의 존재가 고통받는 것조차 마치 자기 자신이 그 일을 겪는 것처럼 힘들어하기도 한다.
이처럼 타인의 감정마저도 아우르는 ‘초감정 특성’으로 인해 HSP들은 눈치가 매우 빠르고 비상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환경에 따라서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우호적인 환경에서는 타인의 감정을 잘 헤아리는 센스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부정적인 환경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번아웃'에 시달리거나 남들의 고통과 스트레스까지 함께 느껴 무기력해지기 쉽다. 따라서 HSP들은 본인이 속할 집단과 환경에 있어서만큼은 반드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3. 심미안(Aesthetic Sensitivity)
HSP들은 대부분 스스로가 가진 주관과 잣대가 강하고, 호불호 역시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미적 감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HSP들은 오감이 관여하는 다양한 문화 및 예술적 영역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이는 이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내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HSP들은 음악이나 그림, 책, 영화 등을 감상하고 스스로 창작하는 과정으로부터 굉장히 깊은 수준의 영감을 느끼며, 감동과 흥분감 또한 만끽한다. 이것은 이들이 가진 ‘초감각’으로 몹시 세밀한 부분까지 식별이 가능해지고, ‘초감정’으로 내면의 깊숙한 부분까지 건드려지게 되는 것과도 같다. 이 같은 ‘심미안’은 풍부하고 복잡한 내면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할 때, 스스로의 마음이 치유되고 내면의 에너지는 충전된다. 다시 말해, ‘힐링’이다. HSP들은 비교적 과부하에 취약한 신경 체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주 휴식을 취하고 주기적으로 '힐링'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자신만의 ‘심미안’을 만족시키는 요소들을 활용한 취미 활동 및 일상 루틴은 에너지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이때 심미안을 공유하고 취미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HSP들의 정신 건강에 있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될 것이다.
- 2부에서 계속 -
참고문헌
1) 최재훈. (2024).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서스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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