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연
[한국심리학신문=김화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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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잊지 못할 첫사랑이 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그를 좋아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싶어서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했고, 그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설렜다. 이름을 부르기보다, 속으로 수없이 되뇌던 시절이었다. 같은 반이 되었던 날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가 음료수를 건네주다가 손끝이 닿았을 때, 하루 종일 그 감각이 남아 손을 씻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고백하지 못한 채 졸업을 맞았다.
대학 시설, 몇 번의 연애를 경험했지만, 그 시절의 그 사람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왜 아직도 그를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걸까?
왜 첫사랑은 잊히지 않을까?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은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사람은 완성된 일보다는 미완성 상태로 남은 일, 혹은 실패하거나 중단된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억은 종종 감정과 결합해 쉽게 잊히지 않는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이 이론은 심리학자의 이름을 따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불린다. 고백하지 못한 첫사랑처럼, 완결되지 못한 감정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것도 이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개념은 한 레스토랑에서의 작은 관찰에서 시작되었다. 자이가르닉은 식사를 하며 웨이터들이 많은 주문을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주목했다. 흥미롭게도 웨이터들은 주문이 끝나기 전까지는 손님들의 요청을 정확히 기억하지만, 주문이 끝난 후에는 금세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완결된 일은 뇌에서 빠르게 정리되지만, 미완성 상태의 정보는 여전히 머릿속에서 ‘열려 있는 파일’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자이가르닉은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다. 실 감기, 종이접기, 구슬 꿰기, 퍼즐 등 다양한 작업을 참가자들에게 시켰다. 실을 감다가 중간에 멈추게 하고, 종이접기를 끝까지 마치게 한 뒤, 다시 구슬 꿰기를 하게 했으며, 이를 중간에 중단시킨 후 마지막으로 퍼즐을 완성하게 했다. 실험을 끝난 후 활동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게 했을 때, 완성한 종이접기나 퍼즐보다 중간에 멈춘 실 감기와 구슬 꿰기가 두 배 이상 더 기억되었다. 결국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우리의 기억 속에 더 강하게 각인된다는 것이었다.
일상에서의 자이가르닉 효과
이 효과는 우리 일상에서도 자주 관찰된다. 대표적인 예가 드라마와 웹툰이다. 대부분의 회차는 가장 궁금한 순간에 끊긴다. 결말을 보지 못한 시청자는 이야기의 다음 전개를 끊임없이 상상하며 그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이가르닉 효과를 활용한 전략이다. 단순한 흥미 유발을 넘어, 계속 생각나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이다.
또 하나의 예시는 ‘과제 미루기’다. 우리는 종종 과제나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고 질질 끈다. 그러나 일단 시작만 해도, 뇌는 그것을 ‘미완의 상태’로 간주하며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리게 된다. 잠시 손을 댔을 뿐인데, 그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결국 다시 책상 앞에 앉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을 활용해 과제를 끝까지 완수하도록 동기를 유도할 수 있다. “완벽하게 시작하는 것보다, 일단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사랑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
다시 첫사랑으로 돌아가 보자. 대부분의 첫사랑은 완결되지 못한 이야기이다. 전하지 못한 말, 끝내 이루지 못한 감정,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 누군가를 깊이 좋아했지만, 용기 내어 다가가지 못했던 시간이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 저장된다. 우리는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 내가 고백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감정에 소용돌이에 빠지곤 한다.
자이가르닉 효과에 따르면, 마음속 어딘가에 완성되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을 때 그 감정은 더욱 오래 기억 속에 머문다. 우리의 뇌는 마무리되지 않은 감정을 ‘계속 처리 중’인 상태로 인식하는 것이다.
첫사랑이 계속해서 아련하게 남는 이유는, 그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시작도, 끝도 없이 멈춰 있기 때문이다.
* 참고 문헌
1) 무심아. (2021). 광고에 적용된 자이가르닉 효과 (Zeigarnik Effect)가 수용자 기억에 미치는 표현전략에 관한 연구(석사학위). 동의대학교 대학원. 부산.
2) 김대영. (2023, 12, 25).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제주일보.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7652
3) 김나영. (2024, 11, 21). 드라마는 왜 꼭 중요한 장면에서 끝낼까? [김나영 선생님의 쉬운 경제].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economy/11174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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