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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동연 ]



“내 미각은 청각이 결정한다. 맛없는 음식을 알 수 있는 능력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함께 맛있어 한다. 나쁘게 말하면 팔랑귀지만, 좋게 말하면 미식가(美食家)가 아닌 미청가(美聽家)이다.”

 

일기장을 뒤적거리다 꽤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 한 단락 옮겼다. 문장은 비루하나, 5년 가까이 지나도 그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몇 사람이나 공감할까 싶지만) 음식에 별다른 흥미가 없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자취생은 언제나 집밥이 그립고, 애인과 데이트할 때 먹는 식사는 늘 달콤하다. 또 어느 새벽, 홧김에 끓여 먹는 라면의 첫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맛집이나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닐 만큼 애정이 있지는 않다.

 


네가 맛있으면 나도 맛있어 



지인이 근무하는 영어학원에는 5일을 내리 마라탕만 먹은 고등학생이 두 명 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인데,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아마 자신의 의견을 적극 피력하는 A와 타인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B의 합작일 것이다. 주로 나는 후자에 입장을 대변한다. 누가 뭘 먹자고 하면 만사 오케이고, 어떤 음식이 맛있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서 따라 먹는다. 오히려 내가 선택해야 할 상황이면 괜히 불편함이 밀려온다. 그렇게 ‘마라탕’과 ‘탕후루’를 먹었고, ‘요아정’과 ‘두바이 초콜릿’을 접했다.

 

한 노랫말에서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라고 했던가. ‘네가 맛있으면 나도 맛있어’가 지론이다. 그 덕에 평소 사람들과 음식으로 인해 생기는 마찰이 드물었다. 그러나 단점도 곧잘 따랐다. 유행을 따라간다거나 음식 맛을 모른다는 등 비아냥대는 소리를 듣기 일쑤이고, 우유부단하다거나 줏대가 없다며 갖가지 질타를 받기 마련이다. 왜 자신만 선택하게 만드느냐고 불만을 듣기도 하였다. 비슷한 사례를 가진 사람이 적잖이 있을 텐데, 이러한 성격은 ‘결정 장애’와 같은 심리 상태에서 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흔히들 결정 장애 내지는 선택 장애라고도 하지만, 어감이 불편하다면 문학 용어를 빌려 ‘햄릿 증후군’이라고 명명해도 무방하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유래한 신조어이다. 주인공 햄릿이 고뇌한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가 음식을 선택하지 못하여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모습과 중첩된다.

 


선택 장애의 선택


 

비단 음식을 결정하는 일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햄릿 증후군’을 겪는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정말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남들보다 결정이 다소 느린 편인데, 스스로 ‘장애’라고 치부한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형성한 단어의 감옥 안에 갇혀버린 것은 아닐지 의심해 봐야 한다. 급한 사회는 빠른 사고를 요구하지만, 모두가 같은 속도를 내지는 못한다. 어쩌면 신중히 고민하는 것이 느린 모습으로 보일까 우려돼 올곧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더라도,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즉, 취향이 없다기보다는 그 분야에 대해서 취향을 가질 정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편할 것이다. 매사에 선택을 못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선택한다고 인식하기도 전에 자연히 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관심은 취향의 영역에서 비롯될 텐데, 그것이 보편적인 취향이라면 괜히 그 잣대가 엄격해진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결정을 하기 바쁜데, 그까짓 음식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러니 음식 하나 못 고른다고, 햄릿들을 타박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이 미식가는 아닐지라도, 당신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는 미청가는 되지 않겠는가. 군소리하지 않고 당신의 선택을 수용하는 그들은, 당신과 ‘음식’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당신’과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선택이다.

 

* 참고 문헌

1) 브릿지 경제 [Website] (2015). [신조어사전] 뭐 먹을까? 어디 갈까? 우유부단 결정장애 '햄릿증후군'

https://www.viva100.com/2015041901000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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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5-22 08: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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