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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강지은 ]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헤어진 연인의 SNS에 자꾸 들어가 본다거나, 멀어진 친구와의 다툼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되새겨본 적이 있는가? 혹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시험이나 면접을 자꾸 후회하며 곱씹은 적은? 우리는 이미 지나간 일을 ‘잊지 못한 채’ 계속해서 마음속에 끌어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잊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이와 같은 현상은 심리학적으로도 잘 설명된다.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미완성 과제 효과’라고도 부른다. 이 개념은 1927년,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의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자이가르닉은 한 식당에서 종업원이 주문을 기억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계산이 끝난 주문은 금방 잊어버리는 반면, 손님이 아직 계산하지 않은 주문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실험을 통해 완성되지 않은 과제나 중단된 일은 뇌에 더 오래 남고, 반복적으로 떠오른다는 것을 밝혀냈다.

 

인간은 이와 같이 강한 인지적 종결 욕구를 지닌다. 확실하게 끝을 맺고자 한다. 끝을 맺은 일은 기억할 필요가 없으므로 후련한 마음으로 관련된 정보를 잊어버린다. 반면, 끝을 맺지 못한 일은 기억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떠올린다. 앞으로 그 일을 제대로 끝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이가르닉 효과와 감정


이 현상은 과제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감정에도 적용된다. 헤어질 때 명확한 설명 없이 끝났거나, 일방적으로 차단당한 경우, 혹은 하고 싶었던 말을 끝내 전하지 못한 채 관계가 종료된 경우. 우리는 이러한 감정들을 마음속에 끝내지 못한 과제처럼 남겨둔다. 그리고 그 과제는 자꾸 떠오르게 된다. 상대의 근황을 몰래 들여다보거나, 대화 내용을 다시 읽어보는 행동은 ‘답’을 찾으려는 뇌의 본능적 움직임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찾는 답이 사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대는 내 질문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고, 지난 선택에 정답은 영영 확인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뇌 속 미완의 과제를 억지로라도 완성하려 하며, 회상, 염탐, 상상을 반복한다. 이는 일종의 자기방어이자 복원적 시도지만, 그만큼 고통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감정은 ‘놓아주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과거에 대한 후회, 미련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만 생각한다’라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을 밀어내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추(rumination)’라고 부르는데, 이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반복적으로 재생되며 나를 소비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종종 그 기억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리지만, 실은 감정이란 없애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미완성의 감정을 건강하게 정리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정리하기 위해서는 ‘내면화된 마무리’가 필요하다. 글을 쓰거나, 혼자서 가상의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다. 상대에게 직접 전하지 못하더라도, 표현되지 못한 감정을 외부로 꺼내는 것 자체가 정리의 시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끝난 일이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답을 얻지 못해도 괜찮고, 해명되지 않아도 멈춰도 된다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해야 한다.

 

과거는 나를 만든 조각이지만, 나를 규정하는 전부는 아니다. 그때의 나도, 그 관계도, 그 선택도 모두 그 시점의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그걸 끌어안고 살아가는 건 때로 고통이 되지만, 동시에 삶의 흔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 사이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그 관계를 건강하게 정리하고, 지금 이 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결국 그 기억조차도 삶을 지탱해주는 자양분으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되새긴다. 그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 장면에 이렇게 말해줘도 좋겠다.


“이제 그만 생각해도 괜찮아. 충분히 애썼으니까.”



참고문헌

1) 경북신문, [Website], 2024, [박미섬의 홀리는 글쓰기] 왜 시험을 보면 틀린 문제만 기억날까?

http://www.kbsm.net/news/view.php?idx=440221

2) 시선뉴스, [Website], 2020, [카드뉴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 더 생각나는 심리적인 이유 ‘자이가르닉 효과’

https://www.sisu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231

3) Zeigarnik, B. (1927). “Über das Behalten von erledigten und unerledigten Handlungen.” Psychologische Forschung, 9(1), 1–85.

4) Lyubomirsky, S., & Nolen-Hoeksema, S. (1993). Self-perpetuating properties of dysphoric rumin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5(2),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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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5-23 08: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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