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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1936년 1월 21일. 새벽.


여관방은 추웠다.

벽 틈으로 찬바람이 스며들었고,

방 안엔 새벽의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장해윤은 아직 단도 하나를 손에 쥔 채,

문 앞에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바깥에선 누군가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무게를 감춘 조심스러운 발소리.

그러나 해윤의 귀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호흡을 죽이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문이 열렸다.


"……!"


하지만 들어온 이는,

일본 순사가 아니었다.


낯익은 얼굴.

하얀 저고리, 남장한 여자.

그는 그 여인을 기억했다.


윤지화.


예전에 독립신문 전달책으로 몇 번 본 적이 있는 조선 여성.


"조용히 하세요.

지금 당장 따라나서야 합니다."


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해윤은 더 묻지 않았다.

그녀를 따라, 여관 뒤편의 허름한 창고로 몸을 옮겼다.


거기엔 통나무 벽 사이를 뚫고 만든

비밀 지하통로가 숨겨져 있었다.


"이쪽입니다."


그녀는 재빠르게 몸을 숙이며

입구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해윤도 그녀를 따라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몇 분 후,


여관 2층에 들이닥친 순사들은

텅 빈 방 안에서

서랍 속에 남겨진 불탄 쪽지 하나만을 발견했다.


“이 꽃은 추위 속에서 핀다.”


지하통로는 오래된 물창고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짧게 말했다.


"우린 내부 정보를 흘려들었어요.

당신이 밀고 당한 거라더군요.

진우 선생님도 그 전에 잡혔고요."

"……진우가?"

"아직은 살아 있어요.

정보를 넘기진 않은 것 같아요."


그 말에 해윤은 눈을 감았다.

가슴 안쪽이 먹먹해졌다.


"도대체…

왜 날 구하러 온 거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을 살려야

이겨낼 수 있으니까요."

"……."

"조선의 겨울은

지금이 제일 추워요.

이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당신입니다."


그녀의 말은 칼날 같았지만,

해윤의 굳은 심장을 뚫고 들어왔다.

그는 그제야,

손에 쥔 단도를 내려놓았다.


그날 밤.

해윤은 경성 성북동의 작은 찻집 지하실에 숨어들었다.


거기서 그는

진우의 체포 직전 기록을 확인했다.

누군가 내부 동선과 연락망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의심스러운 이름 하나.

그리고 그 이름 옆에 적힌,

작은 일본어 문장 하나.


‘한 명의 조선인, 열 명의 동포를 무너뜨린다.’


해윤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조직의 내부 배신자를 추적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모든 혼란의 그림자가

이시카와 다케루의 손끝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그는 싸우기로 했다.




작가의 말 :

6화는 장해윤의 내면적 각성의 순간이다.

죽음을 예감했지만,

뜻밖의 손길은 그를 다시 삶으로 이끌었다.


겨울의 눈 속에서

작은 불꽃 하나가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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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5-08 09: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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