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한국심리학신문=김민지 ]
‘상호 호혜성(reciprocity)’이란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원칙을 의미한다. 간혹 도움이나 친절을 받고도 되돌려줄 생각을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받은 것 이상으로 과분하게 보답하려 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러한 후자의 유형에 ‘예민한 사람들’이 해당된다.
“ 그렇다면 이들은 어째서 이토록, 상호 호혜성을 철저하게 지킬 수밖에 없는 걸까? ”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다른 누구보다 감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정서를 느끼는 깊이 또한 남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초감정’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의 감정 상태가 저절로 감지되고, 그들의 감정을 마치 직접 겪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곤 한다. 특히, 불쾌하거나 힘든 감정일수록 그 강도는 더욱 증폭된다.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 그 감정을 깊은 수준까지 체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죄책감’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훨씬 가혹하게 자책하는 경향이 있으며, 반복해서 그 잘못을 곱씹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감정에 깊이 몰입하는 과정은 스스로의 내면 심층부를 들여다보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감정들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기반이 된다.
별것 아닌 사소한 잘못에도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은, 그 감정이 주는 불쾌감이 워낙 크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을 유발할 만한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 결국 자신에게 지속적인 괴로움을 안겨줄 것임을 알기에, 애초에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말 자체를 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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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HSP(Highly Sensitive Person)들은 ‘과실로 인한 고통(죄책감)’을 매우 강하게 느끼곤 한다. 심한 경우, 자신이 충분히 도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로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방조 혹은 관망)’에 대해서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사례가 적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이러한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양심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이는 본질적인 도덕성에서 비롯된 양심이라기보다는, 비도덕적인 행동이 초래할 내면의 ‘불편함’을 피하려는, 다시 말해 ‘자기방어적인’ 양심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HSP가 상대방에게 있어 오히려 ‘함께하기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이러한 ‘죄책감을 피하려는 경향’ 때문에 ‘양심적’인 동시에, ‘받은 만큼 반드시 되돌려주는’ 철저한 ‘상호 호혜성’ 원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호의를 받고 나면 그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는 동시에 대갚음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굉장히 불편하게 다가오기에, HSP들로서는 최대한 빠르게 보답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받은 호의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괴로워, 급기야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받는 상황’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까지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게 되어도, 기쁜 마음보다는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부담감부터 앞서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이들은 남들에게 부탁하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정작 타인의 부탁은 기꺼이 들어주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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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사람들이 ‘책임감이 남다른 이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성실한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맡은 바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 경험하게 될 ‘극심한 스트레스’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불가피하게’ 매우 높은 책임감을 발휘하게 되는 것에 가깝다. 예민한 사람에게 업무를 위임하게 되면 그 사람의 ‘선천적인 성실함’과는 무관하게, 대부분 결과물이 깔끔하게 처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겪게 될 고통의 깊이를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기에, 그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라도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고통 회피에 기반한 책임감은 주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에 한해서만 발동한다. 가령, 예민한 사람이 팀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팀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성향이 강하지만, 혼자 진행하는 개인 프로젝트에서는 노력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나 하나’만 기분이 좋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황 자체가 주는 압박감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나태해지기 쉬운 성향의 HSP들에게는 개인의 자율성이 높은 프리랜서 환경보다는 외부의 구조와 통제가 있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 업무 능률을 높이는 데 유리할 수 있다. 물론 정신적인 안정감을 위해서라면 프리랜서 활동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으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 쉽고 게으른 경향이 있는 HSP들의 경우, 상대에게 피해를 줄 염려가 없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훨씬 더 나태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직 생활을 통해 꾸준히 성과를 내왔던 HSP가 본인의 ‘성실성’을 과대평가하며 프리랜서나 개인 사업에 섣불리 뛰어드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지금까지 일을 처리하며 들인 노력이 본래 가진 성실함 덕분인지, 아니면 단순히 실패로 인한 고통을 피하기 위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행동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만약 후자에 해당한다면, 혼자 일하게 되더라도 내면적으로 책임을 다해야 할 가상의 대상을 설정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이처럼 타인의 정서를 섬세하게 파악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극도로 꺼리며,
깊은 양심과 막중한 책임감을 지닌 이들이 바로 ‘HSP’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보다 내면의 고통을 훨씬 강렬하게 경험하기에,
스스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며
때로는 연약하게 비치기도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매우 예민하다’는 특성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그 ‘민감함’이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타인의 감정’에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 단어가 풍기는 부정적인 어감이나 인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이들이 탁월한 ‘협업가’임을 세상이 더 많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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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
참고문헌
1) 최재훈. (2024).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서스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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