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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1936년 1월 22일. 오후.


성북동의 찻집 지하.

햇빛이 들지 않는 비밀 공간.

그 안에서 장해윤은 조용히, 그러나 눈동자만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눈앞엔 갈색 서류철.

박진우가 체포되기 전 전달한 연락망 수첩과

조직원 명단 일부가 담긴 문서.


그 문서 위엔,

한 사람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언급되어 있었다.


김병수.


겉으로는 신문 인쇄소 조판공.

실제로는 연락 책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몇 주 전부터 이유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연결되었던 연락선 중 3개가 연달아 무너진 시점과도 일치했다.


"김병수…"


해윤은 조용히 중얼이며, 종이 위에 손끝을 올렸다.

그는 예전부터 의심스러웠다.

자세히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말을 많이 했고,

보이지 않아야 할 자리에 항상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다만 이번엔—

직감이 아니라, 정황이 있었다.

뒤에서 조용히 걸음소리가 다가왔다.


“생각보다, 빠르게 감을 잡으셨군요.”


윤지화였다.

검은 두루마기에 머리를 단정히 묶은 채,

차 한 잔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아셨죠?”


해윤은 물었다.


“진우가 남긴 기록이 있었어요.

그는 마지막까지 김병수를 의심했죠.”

“……진우는 지금 어딨습니까.”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총독부 경무국… 중앙유치장.”


그 말을 들은 순간,

해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이틀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려 했어요.

김병수가, 오늘 밤 총독부 인쇄소로 들어갑니다."

"……뭐라고요?"

“그가… 이시카와와 직접 연결된 내부 요원이에요.

그리고 지금, 총독부 내에서 문서를 조작하고 있습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찰나의 침묵.


“우리가 가진 명단은, 이미 그들의 손에 넘어갔을 수도 있어요.”


지화의 말은 날카로웠다.

그녀 역시 이 싸움의 중심에 있었다.


"김병수, 내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해윤은 단호히 말했다.

지화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예요.

그들이 모를 리 없어요.

그는, 지금 미끼예요."

“…….”

“당신을 낚기 위한.”


해윤은 알았다.

지화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하지만—

그는 이미 선택했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누군가 또 죽는다.


그날 밤.

해윤은 외투 속에 단도와 권총 한 자루를 숨기고,

조선총독부 인쇄소 뒷문으로 향했다.

겨울밤의 경성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은 곧 폭풍의 전조였다.




작가의 말 :

7화는 이중첩자라는 구조가 처음으로 드러나는 결정적인 회차다.

진실은 늘 늦게 도착하고,

그 대가는 누군가의 목숨이 된다.

장해윤은 이제 ‘전달자’가 아닌 ‘집행자’로 바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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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5-09 08: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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