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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윤수빈 ]


Unsplash

여행을 가면,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볼 수 있다. 한쪽은 ‘남는 건 사진파’다. 이들은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말하며, 순간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아끼지 않는다. 인생 사진을 건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SNS 업로드나 프로필 사진 업데이트를 위해 다양한 구도를 시도하며 사진을 많이 찍는다. 또 다른 쪽은 ‘눈으로 담자파’다. 사진보다는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으며, 카메라보다는 풍경 그 자체에 몰입하려 한다. 이런 두 성향이 극명하게 다를 경우, 함께 여행을 떠났을 때 종종 일정 조율이나 여행 방식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행에서 사진을 찍는 것과 눈으로만 담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의미 있는 선택일까?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적 관점에서 그 차이를 탐색해보자.

 

 


남는 건 사진뿐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심리학자 주디 와이저(Judy Weiser)가 제시한 ‘포토 테라피(Photo Therapy)’ 개념은, 사진이 감정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행지에서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은, 단순한 시각 자료를 넘어 그 순간의 분위기, 감정, 냄새와 소리까지도 함께 되살려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는 특히 시간이 흐른 후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 사진이 기억 회상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현상과도 관련이 깊다.


또한 '성격과 사회심리학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사진을 찍는 활동은 경험에 대한 몰입을 오히려 증가시킬 수 있다. 실험 참가자들은 사진을 찍으며 활동에 참여할 때,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경험을 더 즐겼다고 응답했다. 이는 사진 촬영이 순간에 대한 주의 집중을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순간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높일 수 있다는 반론의 근거로 작용한다.


결국 사진을 찍는 것은 우리의 기억을 더 오래,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보존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일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한 순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행동인 셈이다.

 

 


눈으로 담는 게 중요하다


반면, 순간을 눈으로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더 깊은 기억을 남긴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을 가진다. 뉴질랜드 빅토리아 대학의 메리앤 개리(Maryanne Garry) 교수는 “카메라로 순간을 지나치게 기록하려는 강박이 오히려 중요한 순간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사진을 찍는 행위가 오히려 기억을 ‘위임’하게 만들고, 직접적인 감각 경험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페이필드 대학 연구팀은 미술관을 방문한 대학생 28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단순히 눈으로 그림을 감상한 그룹이 사진을 찍은 그룹보다 그림의 세부 정보를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촬영 방해 효과(Photo-Taking Impairment Effect)’로 설명된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간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키고, 결국 인지적 자원을 덜 쓰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 얼마나 집중했느냐는 점이다. 렌즈 너머의 시선이 아닌, 감각을 열고 마주한 풍경은 더 오래, 더 깊이 우리 안에 남는다.

 

 


사진과 추억, 그 접점을 찾아서



그렇다면 여행에서 사진을 찍는 것과 순간을 눈으로 담는 것 중 어느 쪽이 정답일까? 심리학적 논의를 종합해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기록의 방식’이 아니라 ‘기록에 임하는 태도’에 있다. 카메라를 드는 것이 순간을 소홀히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을 다시 곱씹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순간의 본질을 먼저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즉, 사진은 풍경의 감동을 간직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다.


따라서 여행 중에는 먼저 감각을 열고, 사람과 풍경, 공기와 소리의 흐름에 집중해보자. 그런 후에 사진을 찍는다면,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 순간을 복원하는 생생한 열쇠가 될 수 있다.


근래에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이 글을 기억해보자. 순간을 즐기는 마음가짐과 적절한 기록의 균형이야말로 여행을 더욱 깊고 의미 있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참고문헌

1) “이 순간 오래 기억하고 싶다면 카메라 치워라”. 서울신문. 2014.

2) 당신의 마음에 영화를 처방해 드립니다. 전우영. 2022

3) [촬영 장애 효과] 사진 촬영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음미하지 못하고 있다면?. 정신의학신문. 2024.

4) 찰칵, 사진을 통해 보는 우리의 심리: 포토 테라피. 박소영. 2024. 

5) 건강 IN: 여행 자주 할수록 노화 늦춘다…치매 예방 효과도 기대.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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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6-05 08: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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