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욱
경성, 1936년 1월 22일. 밤 11시 45분.
총독부 인쇄소.
벽돌 건물과 철창으로 둘러싸인 구조.
밤이면 더욱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는 공간.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잉크 냄새와 기계음은 멈추지 않는다.
조선의 아침을 지배할 일본어 신문들이
이곳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오늘 밤,
장해윤은 그 공간으로 들어갔다.
회색 작업복,
검정 장갑,
모자 끝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는 예전에 잠시 외부 작업 인력으로 위장해
출입했던 기록을 이용해,
보안 창고 측의 좁은 문으로 침투했다.
문틈 하나, 발소리 하나까지 조심스러운 순간.
밤샘 인쇄 작업 중이라
작업장 안엔 직원 셋,
그리고 감시 순사 둘.
그는 그림자처럼
컨베이어 벨트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김병수는, 이곳 어딘가에 있다.
그는 곧 신문에 삽입될 문서 일부를 ‘조작’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 문서가 내일 발행되면,
독립운동 관련 용의자들의 ‘허위 자백’이 보도될 것이다.
진우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10분 후.
그는 작업장 안쪽,
서류 편집 구역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
김병수가 있었다.
흰색 작업복,
익숙한 얼굴.
그리고 그 손에 들린 문서.
그것은 박진우의 허위 자백문이었다.
“그만두십시오.”
해윤의 목소리가 울렸다.
김병수가 고개를 돌렸다.
잠시 놀란 눈빛.
“…네가 왜 여길…”
“내가 묻겠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
김병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작게 웃었다.
"넌 몰라, 해윤아.
나는… 그냥 살고 싶었어."
“그 대가가 진우입니까?”
“우린 다 죽는다고!
너도, 나도!
하지만… 그 자들은 약속했어.
날 살려주겠다고. 내 동생까지 살려주겠다고.”
해윤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그래서—
너는 열 명을 죽이고, 한 명을 살리겠다는 거냐.”
“너도 그럴 거잖아.
넌 언제까지 정의만 믿을 수 있어?”
“…나는,
끝까지 믿을 것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김병수가 단도를 꺼냈다.
해윤도 즉시 반응했다.
두 사람은 철제 문 안 좁은 공간에서 격하게 부딪쳤다.
서류가 흩어지고,
잉크통이 뒤집히고,
칼날이 종이 위를 긋는다.
그리고—
스윽.
김병수의 손에서 단도가 떨어졌다.
해윤의 칼끝이
그의 옆구리를 긋고 지나갔다.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죽…이지 마…
제발…… 진우만… 살려줘…”
해윤은 그의 손에서 자백문을 빼앗았다.
거기엔 진우의 이름과,
허위로 날조된 조직원 명단이 빼곡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그렇게 하겠다.”
그날 밤.
해윤은 인쇄소를 빠져나왔다.
피 냄새와 잉크 냄새가 뒤섞인 손.
하지만 그 손엔
조선의 아침을 바꿀 증거가 있었다.
작가의 말 :
8화는 행동의 회차다.
장해윤은 마침내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피로 적신 문서가
그 어떤 활자보다 진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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