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교실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단지 누군가의 자리가 비었을 뿐인데,
공기의 결조차 달라진 것 같았다.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왠지 바람이 도는 것 같고,
형광등은 켜져 있었지만,
빛은 이상하게 흐릿했다.
그 자리는—
창가에서 세 번째 줄, 오른쪽 열.
고윤태가 앉던 자리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오늘 오전 7시 18분,
담임 교사의 입을 통해 처음 교실에 전달됐다.
“윤태는 어젯밤, 유감스럽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다만 마지막 문장이 조금 길었고,
‘유감스럽다’는 단어에 한 박자 쉼이 붙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내 이름은 정시아.
지금 나는 이 학교에 전학 온 지 딱 여섯 시간째다.
명목상으론 평범한 전학생이지만,
실제로는 심리상담 및 위기개입 전문기관의
비공식 관찰자다.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외부 전문가가 은밀히 투입되어
‘교실의 공기’를 읽어야 한다.
여기선 그 공기가
너무 조용하다.
사건은 어제 저녁 5시 10분에 발생했다.
학교 옥상에서 떨어졌고,
목격자는 없었다.
유서는 없었으며,
오후 4시 58분경,
옥상 계단으로 올라가는 CCTV에
세 명의 학생이 함께 포착되었다.
그 후,
4분이 흐른 뒤,
내려온 건 단 두 명이었다.
학생들의 진술은 서로 달랐다.
누구는 윤태가 우울해 보였다고 말했고,
또 누구는 “전혀 그런 기색 없었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은—
아이들 모두가 어느 순간부터 그를 외면했다는 점이다.
나는 자습시간을 틈타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윤하림, 반장이자 학교 우등생.
형광등 아래서도 눈부시게 반짝이는 교복.
책상 위의 손가락은 가지런하고,
고개는 15도 기울여져 있다.
누가 봐도 ‘완벽한 학생’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단 한 번도 고윤태의 자리를 향하지 않는다.
그 옆자리 조현빈,
교실 내 이질적 존재.
항상 이어폰을 끼고 있고,
종종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
유일하게 고윤태의 책상 쪽을 몇 번 돌아본 아이.
표정은 무표정.
그러나 시선이 묘하게 ‘거기’ 머문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
대부분은 침묵.
어색한 농담 한두 마디.
소곤거림.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넘기는 교과서 장.
‘이 교실에는 죄책감이 없다.’
정확히는,
죄책감이 허용되지 않는 공기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식당으로 향했다.
나만 교실에 남았다.
그리고 조용히 윤태의 책상에 앉았다.
손으로 책상 위를 쓸었다.
먼지가 없다.
누군가 치운 것이다.
서랍을 열었다.
비어 있다.
지워진 흔적조차 없다.
그러나—
서랍 안쪽, 깊은 틈에
무언가 작은 종이 쪼가리가 접힌 채 끼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꺼내 펼쳤다.
잉크가 번진 손글씨.
다급한 필체.
의도적으로 접은 흔적.
“모두가 알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사라진다.”
숨을 들이쉬는 순간,
종이의 반대편에
다른 문장이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봤다.”
나는 조용히 종이를 접었다.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반쯤 젖혔다.
햇살은 교실 안으로 들이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밝은 건 교실 밖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날 옥상 위에서,
윤태는 무엇을 봤을까.
누구의 눈을, 누구의 침묵을.
그리고,
그때 옥상에서 내려오지 않은 단 한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이 교실엔 누군가 있다.
누군가는 분명히 말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아직도 지켜보고 있다.
나는 이곳의 침묵을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침묵 너머의 이름을 찾을 것이다.
작가의 말 :
이 작품은 자살이라는 무거운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그 중심에 놓고 싶은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침묵과 선택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어쩌면 작은 사회이다.
말해도 바뀌지 않는 일,
들어도 외면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분위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때로 가해자이기도, 방관자이기도, 피해자이기도 하다.
1화에서 보여준 정시아는 아직 ‘관찰자’에 불과하지만,
곧 그녀 역시 이 교실의 일부가 되며
침묵의 구조 안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이 작품은 속도보다 ‘질문’을 중요시 하고 있다.
읽으시면서 스스로에게 조용히 던져주셨으면 합니다.
“당신이라면, 말할 수 있었을까요?”
다음 2화에서부터는 조금씩
아이들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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