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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동연 ]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中)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일화는 그 진위를 떠나서 무진장 낭만적이다.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국어의 어색함이 쫓아버렸다는 김승옥 작가의 문장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사랑을 직설하기보다는, 에둘러 담아내는 직업인지도 모르겠다.

 


○○도 번역이 되나요



소세키의 번역 일화는 그가 소설가이기에 완성되는 이야기일 수 있다. 만약 의뢰받은 번역가가 그런 식으로 옮겼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편집자 선에서 수정이 요구되지 않을까. 혹은 맥락상 초월 번역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겠다. 이처럼 “I love you”를 “나는 너를 사랑해”로 번역하는 것을 직역, “달이 아름답네요”처럼 번역하는 것을 의역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번역과 관련된 용어 중에는 ‘출발어’와 ‘도착어’가 있다. 단어 자체가 귀여운 구석이 있는데, 출발어는 번역되기 이전의 언어이고, 그 대응어인 도착어는 번역의 목적이 되는 언어이다. 즉, “I love you”가 원어이자 출발어라면, “나는 너를 사랑해”는 한국어로써의 도착어이다. 이때 주목할 부분은 출발어는 하나이지만, 도착어는 무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번역하는 언어마다 분명히 다를 테고, 같은 언어라도 번역가마다 해석하는 방식이 각양하다. 이를테면, “愛してるよ”나 “달이 아름답네요” 같이.

 


그렇다면 출발어와 도착어는 항상 다른 언어 사이에서만 존재할까? 같은 언어라면 번역이 불가능할까? 물론 아니다. 번역은 대화의 영역에서도 필요하다. 대화는 화자와 청자로 구성된다. 화자의 말에는 마땅한 의도가 있다.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 나름대로 숨은 의미가 있다. 이때 청자는 화자의 뜻을 포착해야 하지만, 저마다 그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청자에게는 화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하는 직관력도 필요하지만, 화자의 숨긴 의중을 파악하는 해석력도 요구된다. 이렇듯 청자 대부분이 화자의 뜻을 완벽히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애초에 그럴 수가 없다. 때로는 화자 자신도 내뱉은 말에 확신이 없곤 하는데, 청자가 그것을 확신한다는 것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언어를 번역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언어 그 자체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시대 등 양자 간의 각기 다른 부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과 개인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대화는 한 세계가 다른 세계로 번역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번역에서 기대해야 할 것은 정확성이 아니라, 정확에 가깝게 안착해야 하는 근접성이다.

 


마음의 한계



결국 번역은 작가/화자의 마음을 읽는 일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마음을 문학적으로 갈음하면 ‘의중’ 정도이고, 학문적으로 바꾼다면 ‘심리’ 정도가 아닌가 싶은데, ‘마음’이라는 그 몽글몽글한 형상과 음성이 가장 ‘마음’같이 느껴진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던가. 그의 말을 차용하여, 번역의 한계가 마음의 한계라고 정의코자 한다. 우리는 마음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상대의 마음을 번역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의 마음에 닿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확장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 넓은 곳에서만이 “달이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

 

* 참고 문헌

1) 김승옥. (2007). 무진기행. 서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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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6-11 08: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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