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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채진우 ]



마음이 멈췄습니다만,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멍하게 있어요.”


누군가 이런 말을 털어놓았을 때, 우리는 쉽게 ‘번아웃인가 보다’, ‘우울증일지도 몰라’ 하고 넘기곤 한다.


그러나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 마치 ‘마음의 회로가 고장난’ 듯한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화도 안 나고, 그저 무의미함만이 가득한 하루.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감동 증후군’이다.


이 증후군은 단순히 게으르거나 의욕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사라진 상태, 감정의 동력원이 고갈된 듯한 상황이다. 말하자면 내 마음의 엔진이 꺼져버린 것이다.






‘하고 싶다’는 감정의 실종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방향에 따라 움직인다.


누군가는 사랑받고 싶어서, 누군가는 성공하고 싶어서 하루를 버틴다. 하지만 무감동 증후군은 그 감정의 방향, 욕망의 시작점 자체가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좋아하던 일에 흥미를 못 느끼고, 아무 자극에도 반응이 없다. TV를 틀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친구를 만나도 별 감흥이 없다. 


이들은 그 어떤 것도 ‘좋다’거나 ‘싫다’는 감정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감정의 바다가 통째로 말라버린 듯한 상태.


가장 무서운 점은, 이런 상태를 문제라고 느끼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 아니요, 조금 다릅니다


무감동 증후군은 종종 우울증과 혼동되지만, 엄연히 다르다.


우울증은 주로 슬픔, 죄책감, 무가치함 같은 ‘감정의 과잉’이 특징이라면, 무감동 증후군은 감정의 부재, 감정의 ‘텅 빔’에 가깝다.


우울증 환자는 “살기 싫다”고 하지만, 무감동 증후군 환자는 “살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고, 힘들어서 울지도 않는다. 그냥 그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무감동 증후군은 정신적인 정지 상태, 일종의 ‘마음의 마비’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이 아니라 뇌가 고장났을 수도


이 증후군은 단순한 심리 상태의 문제가 아니라 뇌 신경계의 작동 이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전두엽, 기저핵, 전측 대상회 등 감정과 동기를 담당하는 뇌 부위가 손상되었을 때 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교통사고, 뇌졸중, 파킨슨병 등의 뇌질환 이후에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쉽게 말해, 감정이라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뇌의 엔진이 꺼진 것이다.


이때 도파민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기뻐서’, ‘즐거워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지는 감정 자체가 생성되지 않는다.


그냥 살아는 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지속된다.




무기력도 레벨이 있다면 이것은 최종 보스


무감동 증후군 환자는 보통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


누군가 다가와 “산책할래요?” 하고 물으면 “음… 뭐… 상관없어요.” 하고 대답하지만, 그 속에 어떠한 감정의 떨림도 없다. 말투는 평평하고, 눈빛은 흐리다.


놀라운 건, 이들이 지능적으로는 멀쩡하다는 것이다. 말도 유창하고, 계산도 잘하고, 기억력도 좋다. 단지 ‘하고 싶다’는 감정, ‘느끼고 싶다’는 열망이 사라졌을 뿐이다.




그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무감동 증후군의 치료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고,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 1) 약물치료 


  • 도파민 작용을 돕는 약물이 일부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뇌 손상의 정도에 따라 반응은 다르다.


  • 2) 행동 활성화 요법 



  • 감정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행동부터 시작하는 접근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감정이 없어도 일단 산책하기’, ‘기억나는 노래 틀어놓기’ 처럼 말이다.


  • 3) 정서적 자극 반복 노출 



  • 좋아하던 장소나 사람과 자주 접촉함으로써 뇌의 감정 회로를 다시 자극한다.


  • 4) 가족과 주변인의 이해 



  • 비난이나 조언보다는, 그저 함께 있어주고 가볍게 말을 거는 태도가 도움이 된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보다 “산책 같이 갈래?”라는 제안이 훨씬 낫다.




마음이 느려지는 날엔, 조급해하지 말 것


무감동 증후군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특히 심한 스트레스, 외상 후 상황, 뇌 질환 이후에 빈번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 상태를 ‘내가 이상한가 봐’라고만 생각하며 방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분명한 ‘이상 신호’다. 몸이 아픈 것처럼, 마음도 쉬어야 한다.


가끔은 우리의 뇌와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회로를 잠시 꺼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땐 억지로 ‘느끼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살아 있음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감정은 돌아올 것이다. 다만, 조금 천천히 올 뿐이다.




참고문헌

Habib M. Athymhormia and disorders of motivation in Basal Ganglia disease. J Neuropsychiatry Clin Neurosci. 2004 Fall;16(4):509-24. doi: 10.1176/jnp.16.4.509. PMID: 15616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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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6-11 0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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