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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교내 익명 커뮤니티 ‘별빛방’


작성자: 익명

글 제목: "이상한 애는 이상하게 만드는 게 누구냐"

내용:

“다 너희가 만든 거야.

그 애는 원래 그런 애 아니었어.

처음엔 웃는 애였거든.

근데 너희는 그 웃음마저 무섭다고 했지.”


이 글이 올라왔던 시간은

오전 2시 41분.

아이들이 모두 잠든 시간.

혹은, 모두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시간.

글의 조회 수는 24.

댓글은 6개.

그리고, 하루 만에 삭제됐다.

삭제 요청은 관리자로부터가 아니라,

‘작성자 본인’으로부터 이뤄졌다.


나는 시스템 접근 권한을 통해

삭제 이전의 로그 데이터를 열람했다.

댓글은 이랬다.


“누가 누구 얘기하는지 뻔하네 ㅋㅋ”

“그 애는 그냥 병이 있는 거였어.”

“뭐래 갑자기 감성팔이냐”

“지나간 일임. 그만해.”

“조용히 좀 해줄래? 다 정리된 분위기 망치지 말고.”

(삭제됨)


여섯 번째 댓글은 삭제 상태였고,

기록상으로는 단 한 줄만 남아 있었다.


“……웃고 있던 건, 사실 너희였잖아.”


나는 이 댓글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문장은,

누군가의 속에서 너무 오래 고였던

진심처럼 느껴졌다.

그건 분노가 아니라 탄식이었다.

진짜로 고윤태를 기억하는 누군가의.


오후 자율학습 시간,

나는 윤태의 죽음과 관련된

학생 설문 결과 요약 파일을 훑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 정황 없음’

‘대다수 학생이 평소 관계 단절 상태로 인식’

‘반장은 긍정적 분위기 유지에 노력’

‘일부 학생들의 사소한 오해 가능성’

‘심리상담 요청자 없음’


그 보고서에서 가장 이상한 건,

심리상담 요청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토록 큰 사건이 있었는데,

아무도 상담을 요청하지 않았다?


아니,

요청했는데 무시당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익명으로 남으려다 실패한 것일 수도.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정이서.


정이서는 고윤태의 앞자리에 앉는 아이였다.

항상 머리를 묶고 다녔고,

노트 필기를 유독 꼼꼼하게 했으며,

항상 교탁 가까이에 앉는 걸 피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윤태가 죽은 다음 날—

자습시간에 교탁 아래 쪽지를 남겼다.

내용은 짧았다.


“말하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이 없어요.”


쪽지는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았다.

교사가 버릴 뻔한 종이를

청소 담당 학생이 줍고,

그게 ‘우연히’ 내게까지 왔을 뿐이다.

나는 교실 뒤편에서 정이서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눈은 교과서가 아닌,

창밖의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이

윤태의 자리와 겹치는 순간,

나는 내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정이서 — 표현 욕구 존재.

자기검열, 자기책임화 경향 강함.

위험 감지 수준 낮음.

중재 개입 필요.”


댓글은 지워졌다.

쪽지도 버려질 뻔했다.

그리고, 진실은

그 어떤 말보다 빠르게 조용해지고 있었다.




작가의 말 :

4화는 ‘온라인 침묵’과 ‘비공식 기록’이라는 주제를 다뤘습니다.

때로는 말보다 댓글이,

표정보다 삭제 버튼이

더 큰 무언가를 말해줍니다.

아이들은 말하지 않는 법을

너무 빠르게 배웁니다.

말하면 불편해지고,

불편하면 밀려나고,

밀려나면 ‘그 애’처럼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음 5화에선

정이서와의 상담 장면이 드러납니다.

그녀가 ‘보고 싶지 않았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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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5-22 08: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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