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우
[한국심리학신문=송연우 ]
사람이 많고 인기 있는 거리를 가면 ‘사주팔자’를 풀이해 주는 집들이 여럿 보인다. 잘 모르면 믿기 꺼려지고, 잘 알면 더 궁금하고 재밌는 ‘운세’ 같은 사주팔자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한 번도 사주팔자를 보러 간 적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보러 간 사람은 없다고 필자는 감히 단언한다.
사회가 불안정하고 그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가진다. 결국 미래를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짐에 따라 운명론 –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풀이하고 알려주는 것 - 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삶은 정해져 있다?
대표적인 음양 무늬.
양띠, 뱀띠, 호랑이띠…. 열두 동물로 이루어진 ‘띠’는 주로 운세를 점치는 데 사용된다. 매해 무슨 무슨 해라는 이름을 붙이며 새해를 맞이하고 분석한다. 사주팔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할 이야기다. 사주명리학은 자신이 태어난 생·년·월·일·시간을 바탕으로 천간(天干)인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와 열두 띠 동물을 가리키는 지지(地支)인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통해 60개 간지(干支·육십갑자)를 조합한다. 그중 여덟 글자를 배정해 그것을 오행(五行)과 음양(陰陽)으로 바꿔 그 기운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 직업 적성, 운때 등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사주명리학이 가장 많이 비판을 받는 지점 중 하나는 ‘운명론적 관점’이다. 운명론은 우리 인생이 이미 절대적인 법칙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세부적인 흐름은 바꿀 수 있어도, 살면서 무조건 거쳐야 하는 몇 개의 사건들은 무조건 겪는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정당한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사주명리학은 우주 원리와 개인의 운명 사이에 깊은 연결이 있으며, 인간의 삶은 우주의 정확한 순환과 규칙을 따라간다고 주장한다. 17세기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자연의 모든 사건은 인과관계로 결정되며, 자연법칙에 따라 엄밀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지지하였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현대물리학 또한 어떤 계의 ‘거의 정확한’ 초기조건과 자연법칙을 안다면, 그 계의 ‘거의 정확한’ 운동 형태를 계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명리에 적용하면 사람이 태어난 날의 연월일시(年月日時)는 초기조건에 해당하고, 간지(干支)의 음양오행은 자연법칙에 해당하여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는 논리가 도출된다.
자유의지, 근데 정말 있는 게 맞나요
자유의지는 개인이 자유롭게 행동과 선택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뇌는 무의식적인 과정을 통해 결정을 내린다. 보통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통해 삶의 궤적을 그려나간다고 믿으며, 그 ‘선택’은 우리의 온전한 ‘자유의지’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여긴다. 이는 맞지만 동시에 틀린 문장이다. 숨이 붙은 모든 유기체는 끊임없이 선택한다. 여기서 살펴볼 점은 이 결정이 완전히 자유로운가 하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댄 웨그너는 ‘자유의지’보다 ‘무의식적인 의지’를 언급한다. 무의식적인 의지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토대로 아주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데, 그 결정 과정은 우리의 뇌가 발달 과정을 거쳐 형성된 방식과 그때까지 습득한 것들에 기반을 둔다. 즉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삶을 완벽히 예견할 수 없으며, 완벽한 자유의지란 존재하기 어렵다.
생각하기 ‘귀찮을’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렵겠지만, 우리 뇌는 이 글을 읽는 지금도 중요한 정보만 골라내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일종의 대부분 자동조종장치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언제나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환경에 놓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선택적 주의력을 발휘하여 중요한 정보만을 골라낸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우리가 ‘선택’할 때도 종종 작용한다는 걸 아는가? 일반적으로 사람은 판단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을 피하려 한다. 중대한 문제는 부담감이 커 사람들이 결정을 회피하는 태도를 가지게 하지만, 가벼운 문제는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일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덜 부담감을 느끼고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뇌 안의 회로’를 개발해 왔다. 입력된 모든 정보를 처리할 시간, 그 외 추가적인 정보를 찾을 시간, 찾을 수 있는 정보 등이 부족한 상황 혹은 정보가 충분해도 판단이 부담되는 상황일 때 사람들은 ‘휴리스틱’을 이용하여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자신이 인지하거나 선택한 한정된 정보만 이용하여 빠르게 판단하는 방법이다.
휴리스틱의 유형
휴리스틱은 총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대표성 휴리스틱은 대상이 가진 하나의 특징을 그 대상의 전체 특성으로 간주하여 판단하는 방법이다. 사람의 직업, 외모가 그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 비행기의 사고 비율이 다른 탈 것의 사고 비율보다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비행기가 더 위험하다’라고 느끼는 것이 있다. 이는 드물게 일어나는 비행기 사고 영상이 비행기의 안전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둘째, 가용성 휴리스틱은 내가 잘 알고 익숙하며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생각을 주된 근거로 삼아 판단하는 방법이다. 경험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의 기존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불리하다.
셋째, 정박 휴리스틱은 배가 닻을 내리면 닻줄 범위에서만 배가 움직이듯 사전에 제시한 숫자 혹은 사물이 무의식적인 판단 기준점이 되어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어떤 거래를 할 때 특정 액수를 직접적으로 제안한다면, 제안받은 사람은 그 숫자를 기준으로 거래가를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프레이밍(framing) 휴리스틱은 어떤 단어나 맥락이 감정을 흔들어 판단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폭행 범죄의 성격을 결정할 때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너무 강한 나머지 정당방위를 넘어선 보복’인지, ‘상대방에게 당한 것을 갚아주겠다는 이유만으로 실행한, 미필적 고의가 다분한 살인미수’인지 구분하려면 범죄 상황의 객관적인 서술이 우선 필요할 것이다.
마치며
사주명리학은 우리의 삶이 전부 정해진 것처럼 묘사한다며 불편하다는 의견이 왕왕 보인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운명론적 관점에 매몰되어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게 좋은 미래라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하지만 사주명리학을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 전에 현재의 나 자신이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딜 용기를 가질 수 있길, 과거의 경험에 매몰되어 어긋난 선택을 하는 대신 이를 바탕으로 도전적이고 영감을 주는 삶의 방향을 찾아낼 수 있길. 모두가 각자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길 필자는 바란다.
참고 자료
1) 김두규. (2023-12-15). 당사주에서 MBTI까지 점술의 한반도 수용사.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서울.
2) 김태호. (2025년02월03일). 좋은 이름? 올해엔 최악이다…“을사년엔 이 한자 절대 금지”.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1340
3) 윤상흠. (2024). 명리 운명론과 자유의지의 상호작용에 관한 고찰. 문화와융합, 46(1), 1533-1546.
4) 윤재윤. (2024년03월21일). Ⅳ. 재판의 심리학 - ② 정확한 판단과 휴리스틱. 법률신문. https://www.lawtimes.co.kr/opinion/196830
5) 편집부. (2024, 1). 인사이트 ‘자유의지’ 아닌 ‘무의식적 의지’의 선택. 브레인, 1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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