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정이서는 말이 적다.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해야 할 말을 늘 고르다가 삼킨다.
아무도 그녀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녀도, 주목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이서는 늘 교실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자리,
교탁에서 멀고, 창문에서도 먼 구석.
그곳은 안전하다.
조용하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조용하면… 누구도 묻지 않는다.
그게 이서가 원했던 모든 것이었다.
적당한 거리감.
불투명한 존재감.
하지만 그날,
윤태가 죽은 날,
이서는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옥상에 올라간 세 명의 그림자를 보았다.
정확히는,
옥상 문을 지나가는 그림자 세 개를 ‘느꼈다’.
발소리는 작았고,
말소리는 거의 없었지만,
그 순간의 공기는 분명히 변해 있었다.
그리고 3분 뒤—
문은 열렸고,
단 두 사람만이 내려왔다.
그녀는 생각했다.
“왜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않으려 애썼을까.”
나는 이서를 상담실로 불렀다.
공식 요청은 아니었다.
단지 쪽지 한 장.
단 한 줄.
“정이서 학생, 혹시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나는 당신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 말 한 줄에
이서는 망설였다.
그리고,
왔다.
“제가… 뭘 도와드려야 하나요?”
그녀는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끝은 항상 미세하게 올라갔다.
불안의 흔적.
“그날을, 기억하시나요?”
이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떤… 날이요?”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물었다.
“윤태 학생이… 떠난 날입니다.”
그녀는 손가락을 꼬며 말했다.
“그날… 저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못 본 건가요,
아니면… 보고 싶지 않았던 건가요?”
그녀의 어깨가 움찔였다.
눈동자는 교실 바닥을 더듬었다.
그리고 한참 만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날, 옥상 문 앞에 있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스스로 숨겨두었던 문장을 꺼냈다.
“3명이 올라가는 걸 봤어요.
한 명은… 울고 있었어요.
정말로요.
소리는 안 났지만,
어깨가… 그렇게 움직였어요.”
“그리고?”
“그리고…
내려올 땐,
한 명은 웃고 있었어요.”
“누군지… 알 수 있었나요?”
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느꼈다.
그녀는 안다.
그녀는—
‘누가 내려오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말했다.
“그 사람은 지금도,
매일 윤태의 자리를 쳐다봐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근데 아무도 이상하다고 안 해요.
다들 그냥…
그걸 못 본 척해요.
그게 더 무서워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왜 이제야 말하는 거죠?”
정이서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 애가
계속 꿈에 나와서요.
말 좀 해달라고,
너무 조용하게 우는 표정으로.”
작가의 말 :
5화에서는 드디어 ‘제3의 목격자’, 정이서를 통해
사건 당시 옥상에 있었던 누군가의 감정이 처음으로 묘사됩니다.
정이서는 침묵 속에서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는 것을 멈추는 법’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은 결국
윤태의 부재 앞에서 무너져버립니다.
심리학적으로,
이서는 ‘회피형 방어기제’를 오랫동안 사용해왔습니다.
하지만 회피는 기억을 지워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더 깊숙한 곳에 밀어넣을 뿐입니다.
다음 6화에서는
윤태가 죽기 전 작성한 하루치 일기장과
그가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윤태의 마지막 메시지를
‘읽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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