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은
[한국심리학신문=강지은 ]
“오늘은 뭘 입지?”
출근 전이나 등교 전에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시작을 옷장에서 보낸다.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이면 흰색 셔츠나 최대한 단정한 옷을 찾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후드집업이나 편한 트레이닝복이 눈에 띈다. 이처럼 우리는 때로 옷으로 말하고, 옷으로 감정을 조절한다.
의복 인지 이론(Enclothed Cognition) : 옷이 마음에 영향을 준다고?
이런 일상적인 경험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 바로 ‘의복 인지 이론(Enclothed Cognition)’이다. 2012년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애덤 갤린스키(Adam Galinsky) 교수 연구팀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의사의 가운을 입히고 집중력을 측정했더니, 일반 옷을 입은 집단보다 훨씬 더 높은 집중력을 보였다. 반면, 같은 옷이라도 ‘화가의 가운’이라고 소개하자 효과는 사라졌다. 옷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옷이 지닌 ‘상징적 의미’가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 이론은 우리의 일상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면접 날에는 평소와 달리 단정한 셔츠에 블레이저를 고르고, 중요한 발표가 있을 땐 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하며 구두를 신는다. 마치 스스로 “나는 준비됐어”라고 말하는 듯이. 반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엔 평소보다 더 헐렁한 옷을 입고, 그 자체로 마음을 내려놓는다. 하루의 무게감과 기분이, 옷차림이라는 형태로 표출되는 셈이다.
감정 조절 도구로서의 옷
이런 현상은 감정 조절 전략 중 하나인 ‘표현 조절’과도 연결된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 일부러 밝은색 옷을 입거나, 평소와 다른 메이크업을 통해 기분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꽤 흔하다. 누군가는 새 옷을 사며 자신감을 회복하고, 누군가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는다. 결국 ‘어떤 옷을 입느냐’는 질문은 ‘오늘 나는 어떤 내가 되고 싶은가?’와도 맞닿아 있다.
최근엔 ‘코디테라피(Coditherapy)’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에 맞는 옷을 입음으로써 정신적 안정을 찾는 활동을 말한다.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으로 옷을 고르고 꾸미는 일이 하나의 ‘자기 돌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옷장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심리적 치유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옷으로 ‘관계의 거리’를 조절한다.
또한 옷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심리적 거리’를 조절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폐쇄적인 환경에서는 의도적으로 튀는 스타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강조하기도 하고, 반대로 주목받고 싶지 않을 때는 무채색 옷으로 스스로를 숨기려 한다. 이처럼 우리가 외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고,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도구가 바로 옷이다.
나는 누구인가-옷으로 표현하는 자아
우리가 고르는 옷은 단순히 현재의 기분을 표현할 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이기도 하다. 캐주얼한 옷을 입던 사람이 갑자기 평소와 달리 단정한 셔츠를 고르는 순간, 또는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색을 시도해보는 순간, 그 선택 안에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정의나 시도가 담겨 있을 수 있다. 옷은 자아 정체성을 탐색하고 실험할 수 있는 가장 부담 없는 방법 중 하나이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아침 옷을 통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한편에서는 “겉모습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옷이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되면 외모 중심의 사회를 부추기는 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외모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청소년, 직장인들이 심리적 부담을 겪는 사례도 많다. 따라서 옷을 통한 감정 조절은 타인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처럼 의복은 단순히 신체를 가리는 기능을 넘어, 정체성·감정·사회적 역할을 함께 아우르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옷차림은 내면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언어이며, 때론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기도 한다.
당신이 오늘 고른 옷은 어떤 감정을 대신 말하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 거울 속 당신의 모습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가장 솔직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Adam, H., & Galinsky, A. D. (2012). Enclothed Cognition.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8(4), 918–925.
2. Gross, J. J. (1998). The Emerging Field of Emotion Regulation: An Integrative Review.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2(3), 271–299.
3. MIT Sloan Management Review (2012). What You Wear Can Influence How You Perform
4. 헬스조선, [Website], 2013, 옷장을 열면 당신 마음이 보인다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1305300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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