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우A
[한국심리학신문=백지우A ]
“오늘은 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낚시를 하고, 꽃을 심고, 마을을 산책했다.”
닌텐도의 게임 중 ‘동물의 숲’은 미션도 없고, 승부도 없다. 사용자는 조용한 섬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상을 꾸리며 시간을 보낸다. 이 단순한 구조의 게임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디지털 피난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코로나 이후 더 많은 이들이 이 게임에 몰입한 이유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다. 팬데믹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심리적 안정과 회복을 필요로 했다. 동물의 숲은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벗어나, 느리고 반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이 게임은 일종의 ‘심리적 쉼표’를 제공한다.
회복탄력성과 자연유대감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현상은 회복 탄력성(Resilience)과 자연유대감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회복 탄력성은 스트레스나 정서적 손상 이후 다시 균형을 찾고 회복하는 능력을 의미하고, 자연유대감이란 개인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정도를 뜻한다. 자연유대감을 향상하게 되면 감정조절 능력에 도움이 되고, 공감 능력 등이 발달 할 수 있다.
심리학자 로저 울리히(Roger Ulrich)의 이론에 따르면, 자연의 이미지가 사람의 감정을 안정 시키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영국 엑서터대와 오스트리아 빈 대학 공동 연구진이 진행한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자연 풍경을 보았을 때 같은 통증 자극에도 더 적은 고통을 느낀다고 보고했다. 이 실험은 뇌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 자연이 아닌 가상의 자연 영상에도 충분히 이완 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해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국내 한 실험 연구에서는 자연환경 영상을 감상한 초등학생들이 단순히 인공환경 영상을 본 또래에 비해 자연에 대한 유대감과 협력적 태도가 모두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연구진은 자연 경관의 간접 체험이 정서적 친환경 감수성을 증진시키고, 집단적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인 행동 성향을 유도한다고 보았다. 이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자연과 연결된 심상이 사회적 정서와 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물의 숲은 이러한 자연 풍경을 디지털로 구현한다. 숲, 물소리, 동물 친구들, 잔잔한 음악은 가상공간이지만 실제 자연의 감각과 유사한 자극을 준다. 반복적이고 부드러운 활동은 불안한 감정을 가라앉히는 데도 효과적이다. 또한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무엇이든 만들고 쉴 수 있다는 자유 또한 정서적 안정감을 부여한다.
존재 자체의 인정
더하여 동물의 숲 속 주민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또한 큰 위로가 된다. 동물 친구들은 항상 따뜻한 말투로 말을 건네며, 사용자의 존재를 인정해준다. 이러한 사회적 상호작용은 실제 인간 관계처럼 정서적 안정감을 주며, 외로움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 현실에서 관계에 지치거나 상처 받은 이들이 게임 속 관계를 통해 심리적 지지를 경험하는 경우도 그 사례 중 하나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게임이 우리에게 “무언가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게임이 목표와 경쟁을 통해 성취를 추구하게 만드는 반면, 동물의 숲은 실패도, 시간 제한도 없다. 사용자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성과 중심적인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존재 자체의 가치를 일깨운다. 지금 당장 쫓기고, 달리지 않아도 현재가 안전하고 내 존재 자체로 괜찮다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심리치료에서 사용되는 심상화 기법(Imagery Technique)과도 연결된다. 심상화는 내면에 안전한 장소를 떠올리며 그곳에 머무는 상상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는 기법이다. 실제 장소일 수도 있고, 상상 속 풍경일 수도 있는 이 ‘마음 속 피난처’는 우리 뇌에 “지금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동물의 숲의 섬은 많은 이들에게 그러한 심상 공간이 되어준다. 즉, 게임을 하는 순간 뿐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이러한 안정감을 지속할 수 있다.
느림의 가치
현대인은 끊임없는 연결과 성과, 비교 속에서 지치기 쉽다. 그럴 때, 한적한 디지털 섬에서 꽃을 심고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험은 단순한 여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느림의 가치’, 있는 그 자체로 존재해도 된다는 가치의 회복이다. 게임을 통해 충분한 쉼의 시간을 갖고, 그 안정감을 기억하며 일상을 차근차근 살아내어 보자.
참고문헌
이미지출처: https://www.eyesmag.com/posts/158421/animal-crossing-new-horizons-coex-aquarium
https://blog.naver.com/jeongsim22/223012794036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196555.html
https://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1773
https://s-space.snu.ac.kr/handle/10371/12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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