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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재는 반에서 조용한 축에 속하지 않았다.

그는 인기 있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투명한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늘 적당한 위치에 있었다.


중앙이 아니라,

중앙에서 살짝 비껴난 곳.

‘중립’이라는 방어막 속에서.


하지만 그런 그가

윤태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라는 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재는 상담 요청에 처음엔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읽지 않은 메시지’에 대한

한 통의 쪽지가 그의 사물함에 꽂힌 뒤,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그건… 진짜로 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의 첫마디였다.


“왜요?”

“말하는 순간,

나한테 책임이 생기니까요.”


그 말은 정직했다.

그리고 동시에… 깊게 흔들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메시지,

언제 봤나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그날 밤… 11시 48분.

자기 전에,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폰 봤어요.”

“읽고, 답은 안 했나요?”

“…네.”

“왜요?”


윤재는 손을 깍지 낀 채

책상 위를 응시했다.


“내용이… 애매했어요.

뭐랄까… 그냥 그런 말들.

그냥,

‘힘들다.

너한테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일은 기억나지?’

같은 말들.

근데, 솔직히

저도 기억나지 않았거든요.”


그는 덧붙였다.


“아니… 기억나는데,

그냥… 그걸 말해주는 게

더 큰 일이 될 것 같아서요.”


나는 윤재에게

윤태가 남긴 일기장을 보여줬다.

죽기 전 일주일간

그가 직접 적었던 글들.

그 안에는

이름은 없지만

‘어떤 친구’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그 애는 나한테 말했었다.

‘우리 둘만 안 본 걸로 하자’고.

근데,

나는 계속 그 장면을 본다.

밤에도,

문을 열 때도,

계단을 내려갈 때도.”


나는 물었다.


“혹시… 그 ‘둘’ 중 한 명,

윤재 학생 아닌가요?”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끝이 떨렸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날,

사실 난 말렸어요.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어요.

난… 윤태한테 직접 말한 적 없어요.

그날 일에 대해.

그냥, 조용히 있으면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럼 윤태는…

누구에게 말했을까요?”

“아마… 저요.

그날 밤, 그 톡은

말이 아니라 구조 요청이었을 거예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재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때… 단 한 줄이라도

‘괜찮아?’라고 답했다면

어땠을까요.”


그 목소리엔

후회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그의 발끝을 따라 교실 바닥까지 번지고 있었다.




작가의 말 : 

6화는 ‘읽었지만 답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우리는

수많은 메시지를 받고,

읽고,

때로는 무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루의 끝에 무거운 죄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최윤재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말은 늦을 수도 있고,

침묵은 기억됩니다.

그의 무응답은

윤태에게 하나의 결론이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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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5-26 08: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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