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서
[한국심리학신문=유영서 ]
어떤 이들은 이제는 들어가지도 않는 작은 교복을, 사용하지도 않는 옛날 휴대폰을 쉽게 버리지 못한 채 품고 살아간다. 오랫동안 발이 되어주던 낡은 자동차를 떠나보내지 못해 억지로 수리하며 타고, 폐차하러 가는 길 위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고장 난 로봇청소기를 거실 한구석에 모셔둔 채 지내곤 한다. 왜 사람은 이렇듯 감정 없는 사물들에게까지 애착을 가지게 될까? 강아지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키우며 정을 주고 큰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데다 일정 수준의 상호작용까지 가능한 동물과 로봇청소기, 자동차 등의 사물들은 크게 다르다. 그저 청소하는 것, 운전하는 것이 일인 청소기와 자동차에게 이름을 붙여주며 정을 주고 마음을 주는 이유는 뭘까? 이러한 사람의 심리에 대해 알아보자.
사물에 감정을 불어넣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와 마리아네 지멜이 1944년 수행한 심리 실험이 있다. 연구자는 하얀 바탕에 검은 삼각형, 동그라미 등의 도형이 돌아다니는 단순한 영상을 피험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감정을 영상에 투사했다. 영상 속에 나오는 커다란 삼각형이 작은 삼각형을 ‘쫓는다’고 표현했고, 작은 삼각형은 ‘두려움’을 느끼고 ‘달아나는’ 모습을 보인다고 표현했다. 그저 움직이는 도형일뿐인데도 사람들은 당연한 듯이 이를 의인화한 채 보고 있던 것이다.1) 주인의 명령에 따라 청소를 하는 로봇청소기, 운전자가 운전하는 대로 주행하는 자동차에게 연민을 느끼고 ‘불쌍하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기억의 매개체
오랫동안 함께한 물건은 단순히 물건 그 자체의 기능을 넘어 기억의 매개체 역할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생 시절 처음 가진 휴대폰, 그 시절에만 입을 수 있었던 교복, 처음 면허를 따고 긴장했던 순간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준 차와 같이 특정한 기억들이 그 물건 안에 깃들게 되는 것이다. 열심히 그림을 그려둔 스케치북을 엄마가 마음대로 버렸을 때, 내 그림뿐만 아니라 추억 자체가 모두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과 같다. 하나의 물건에도 다년간의 추억이 입혀져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무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래된 물건 정리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변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애착
사람은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해외여행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길을 걸을 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등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반가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늘 곁에 있다면 사람은 자연스레 그것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된다. 중학생 때 선물 받은 인형을 대학생이 된 후에도 침대에 올려놓고, 인형을 껴안으면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고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물건은 때때로 사람에게 감정적 위안을 주곤 한다. 비록 의사소통이 가능하여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존재라면 더 효과가 크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존재를 곁에 두고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물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애착을 형성하고, 반려동물들과 추억을 쌓으며 심지어 자주 보이는 길고양이에게까지 정을 붙여 쉽게 사랑을 주곤 한다. 생명체를 넘어서 인형과 로봇청소기, 자동차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며 측은지심을 가질 때도 있다. 이처럼 사람은 세상의 수많은 존재들을 대상으로 정을 붙이고 마음을 주며 살아간다.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들에 비해 유독 정이 많은 것일 수도, 아니면 반대로 정을 주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나약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사람은 애착 없이 살아가기 힘든 존재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특정한 물건에 대한 애착은 지나온 자신의 시간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다. 만약 버리기 아까운 물건이 많다면, 그만큼 잃어버리기 싫은 소중한 추억이 많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참고문헌
1) 권오성, “로봇, 감정을 배우니…‘사람은 무엇인가’ 깊은 물음”, 한겨레신문,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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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경험을 심리학적으로 따뜻하게 풀어냈다는 점인 것 같아요. 낡은 교복이나 로봇청소기 같은 소재를 통해 독자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 물건에 담긴 추억과 애착을 정서적으로 깊이 있게 다룬 점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또한 하이더와 지멜의 실험을 예로 들어 객관적인 심리학 근거를 제시하면서도 글 전반의 감성적 톤을 잘 유지한 점도 훌륭하다고 생각해요.